각박하고 치열했던 직장생활을 정리할 즈음, 은퇴한 뒤 수행자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조계종 종단법은 만 50세를 출가 상한 연령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은퇴자가 ‘제2의 인생’을 열 수 있도록 출가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종단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출가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실을 타개할 대안이기도 했다.
이에 제기된 것이 ‘은퇴출가제도’이다. 말 그대로 은퇴자에게 출가의 길을 열어주자는 게 그 골자다. 이에 중앙총회 출가제도개선특별위원회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은퇴출가제도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앞서 지난해 출가제도개선특위가 마련한 ‘은퇴출가에관한특별법’은 논란 끝에 부결된 바 있다. 특별법 제정안은 출가 대상을 만 51세 이상 70세 이하의 은퇴자로 하고 ‘수행법사’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출가 기간을 1년으로 하고 심사를 거쳐 1년 단위로 연장하도록 했다. 또 승려법·교육법·승려복지법 등은 적용하지 않았다. 이에 출가자에게 법사 신분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신분으로 내모는 것이며 사실상 단기 출가 제도와 다를 게 없다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이날 공청회의 기조 발제를 맡은 총무원 기획실장 주경 스님은 기존 특별법 내용을 보완하며 은퇴출가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경 스님은 “은퇴출가자를 성직자가 아닌 수행자라는 폭넓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우선 은퇴출가자에게 최소한의 승려의 지위를 부여해 수행, 봉사, 포교의 역할을 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은퇴출가자의 자격을 각 사회 분야에서 10∼15년 활동 경력을 가진 55세 이상자로 정하고, 출가 이후 3년간 행자 신분에 머무르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다. 또 행자 기간 3년이 후에는 호적과 세속관계를 정리하고 사미계 혹은 사미니계를 받을 수 있으며 이후 5∼10년이 지나면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주경 스님의 안에 따르면 은퇴출가자는 구족계 이후 더 이상의 법계는 취득할 수 없다. 주경스님은 “유사승려가 배출될까 걱정하기보다는 한 명이라도 귀한 출가의 뜻을 품은 사람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자상한 마음이 우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로 나선 포교원 포교연구실장 원철 스님은 은퇴출가제도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우려를 제기했다. 원철 스님은 “지난 2005년 출가자 감소 해소를 위해 출가연령 상한선을 40세에서 50세로 높인 뒤로 전체 출가 인원의 절반 이상이 40∼50대가 차지하는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되레 출가 시기가 늦춰지고 젊은 출가자들이 줄어드는 등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서는 은퇴자들이 재가선원에서 동안거·하안거에 참여해 몇 달씩 절에 머물며 수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재가선원을 확충해 불교 저변 확대에 힘쓰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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