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2년간 교제 중인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고등학교 2학년 이영선(18·가명)양은 걱정이 태산이다. 그날이 배란일이라 임신이 될 수도 있어서다. 친구들은 경험담을 들려주며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사후피임약을 사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이양은 임신을 막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후피임약을 구입했지만 구토나 하혈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문구에 마음이 흔들렸다.
인터넷에서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사는 10대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 사후피임약은 대량의 호르몬을 투입하기 때문에 두통·하혈 등 부작용이 커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의사 상담을 부담스러워하는 청소년들은 인터넷에서 구입해 적정한 복용량도 모른 채 먹는 경우가 많다. 사후피임약을 의사 처방전 없이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안전한 피임에 대한 인식도 약해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17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검색해본 결과 단 30분 만에 여러 곳에서 사후피임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는 반드시 의사 처방을 받아야 약국에서만 사후피임약을 살 수 있다.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사후피임약은 주로 본인이 사용하고 남았거나 해외 직접구매로 유통되는 것들이다. 특히 국내와 달리 약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국가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뒤 국내로 몰래 들여와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사후피임약은 정상적으로 처방을 받아 사는 것보다 3~4배가량 비싸게 팔린다. 실제 한 사후피임약의 경우 산부인과 의사에게 처방을 받으면 약 4만5,000원에 살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10만원 가까운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약국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데도 잘 팔리는 것은 병원과 약국을 가지 않고도 구할 수 있어서다.
사후피임약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유통 경로가 형성되면서 오남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72시간(3일) 안에 12시간 간격으로 2회 복용했을 때 임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평소에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일반 경구피임약보다 10배가 넘는 호르몬을 한꺼번에 투여하는 방식이어서 두통이나 하혈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한 산부인과 원장은 “청소년기에 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약을 자주 복용하면 성인이 됐을 때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게다가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약들 가운데 성분을 믿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의 음성적 사후피임약 거래를 막으려면 불법유통을 단속하고 사후피임약의 부작용을 정확히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련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각종 약물의 온라인 불법유통을 감시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모니터링 요원은 서울지사 기준으로 5명에 불과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사후피임약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사이트 운영자는 사이트 주소를 수차례 옮기며 단속을 피하고 있어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청소년들에게 사후피임약의 위험성을 알려 줄 성교육시설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에 58곳의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있지만 700만~800만명에 이르는 청소년 가운데 20%가량만 교육이 가능한 실정이다. /박우인·이종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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