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굵고 커다란 체격의 배우 조진웅(41·사진)이 작품 속에서 보여준 촉촉한 눈빛은 ‘소의 눈’을 닮았다. 그를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린 2009년 ‘솔약국집 아들들(KBS)’의 브루터스 리부터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의 기태, 지난해 tvN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까지 투박하지만 순수한 캐릭터를 완성한 것도 바로 그 눈빛이었다.
그가 원톱 주연한 영화 ‘해빙’은 겨우내 얼었던 한강이 녹자 머리 없는 여자 시체가 떠오르면서 사건이 드러나는 심리 스릴러물이다. 한 노인의 살인 고백을 들은 뒤 공포에 휩싸이는 내과의사 승훈 역을 맡아 악몽, 기억, 현실을 오가는 심리 변화를 세밀하고 밀도 있게 표현한 그를 최근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예민함과는 거리가 있는 역을 주로 맡아온 조진웅이이번 작품에서는 온 세포가 다 살아 있는 듯 날 선 의사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놓고선 엄살을 떨며 입을 열었다. 이번 영화를 두고 “애를 낳아보지 않아 그 고통은 짐작할 수는 없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산통을 겪으며 어렵게 세상에 내놓은 아이 같은 존재”라고 한 그는 “그래도 손·발·눈·코·입이 다 제자리에 있는 멀쩡한 아이”라 빗댔다. 베테랑인 그에게 이번 역할이 어려웠던 건 계산된 연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어요. 캐릭터 안에서 가슴에 요동치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신명 나는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두 번은 못 하겠네요.” 몰입한 탓에 수갑을 차고 간호사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찍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너무 힘을 줘 수갑이 풀리고, 촬영 후 집에 와서 보니 팔뚝 전체에 멍이 들었다고.
영화 속 친절한 듯하나 위험해 보이는 정육점 사장(김대명), 공허한 눈빛으로 진실 같기도 한 헛소리를 하는 치매 노인(신구), 미심쩍은 간호조무사(이청아) 등 인물은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춰 관객을 섬뜩한 스릴러로 몰아넣는다. 그는 “간만에 세련된 스릴러물이 나왔다”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열심히 일하는 남자는 매력적이다. 출연작마다 혼신을 다하는 그는 ‘꽃미남’이 아님에도 ‘현실미남’이라 불리며 두터운 여성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제가 어디가 잘생겼어요. 그런 말 해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요. 모든 엄마들은 자기 자식이 제일이니까요.” 지금 그에게 ‘해빙’이 최고이듯 말이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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