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정에 나온 증인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상황에 단호하게 대응하며 탄핵심판을 원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월 3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증인이 보낸 문자를 보면 최순실씨와 같이 (청와대에) 들어간다는 뜻 아니냐. 위증 문제와 직결되니까 ‘맞다, 아니다’ 이야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행정관은 최씨를 태우고 청와대로 들어간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가 드러났는데도 관련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잡아떼던 터였다. 이 권한대행의 추궁에 이 전 행정관은 “(문자에) 나와 있으니 그런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허를 찌르는 ‘송곳 질문’도 증인의 입을 열었다.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지난달 15차 변론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개입한 혐의를 받던 방기선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재단법인 설립을 기밀이라고 생각했느냐, 아니면 그냥 좋은 뜻으로 인식했느냐”고 물었다. 방 전 행정관이 “좋은 뜻인데 기밀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하자 강 재판관은 “그게 왜 기밀사항이라고 생각했느냐”며 파고들었다. 이에 방 전 행정관은 “법적 절차를 거쳐서 설립되는 게 아니라 기밀로 다룬 것 같다”며 재단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설립되지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재판관들은 대통령 측의 지연 전략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강 재판관은 2월 13차 변론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의 증인 신문이 끝난 뒤 “기록에 다 있는 내용인데 이걸 왜 굳이 확인하는지 주심인 내가 잘 이해가 안 된다”며 “신문 취지를 말해달라”고 했다. 대통령 대리인 측이 무더기 증인 신청을 해놓고 신문 당일에는 검찰 조서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 신문을 하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재판관을 향한 도를 넘은 비판에는 엄중히 경고했다.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가 강 재판관에게 “청구인(국회)의 수석대리인”이라고 하는 등 헌재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하자 이 권한대행은 “말씀이 지나치다. 수석대리인이라는 말은 감히 여기서 할 수 없다”며 제지에 나섰다. 강 재판관은 “주심의 실명을 거론하며 수석대리인이라고 하는데 김 변호사가 (변론에서) 거론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그런 발언은 보기 어렵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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