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원칙대로 법률에 근간을 뒀다. 헌법재판관 8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위를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로 규정했다. 국회 소추위원과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중대한 법 위배행위’를 두고 각각 ‘위배했다’와 ‘파면될 정도로 위배하지 않았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전원은 국회 주장에 손을 들어주면서 ‘파면’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대통령 파면으로 헌법 수호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10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21분간 읽어 내려간 결정 요지에는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세월호 관련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 성실수행의무 위반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허용, 권한남용 등의 쟁점별 탄핵 사유와 심판 과정에서 대통령 측이 문제를 제기했던 △탄핵소추안의 가결절차 △8인 재판관 체제에 대한 적법요건 등이 담겼다.
◇‘파면’ 결정 지은 최순실 국정개입=헌재는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허용, 권한남용을 파면할 만큼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다른 탄핵사유에는 위법을 저질렀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탄핵사유로 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통령 측에 일말의 희망을 줬지만 결국 마지막 탄핵사유에서 박 대통령의 운명을 갈랐다.
헌재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한 공무상 비밀 문건 유출과 문건을 전달받은 최씨가 내용을 수정하거나 대통령 일정을 조정하는 등 직무활동에 관여했다고 봤다. 또 최씨의 이권 개입을 도왔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나타난 기업 출연 등 검찰과 특검 수사에 드러난 대부분 혐의를 인정했다.
헌재는 결정 요지에서 “박 대통령의 행위는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며 “이는 헌법·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통해 최씨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대통령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 침해뿐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봤다. 여기에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의무를 위배했다고 판단했다.
재판관들은 대통령의 이런 행위가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하다고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헌재는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 단속을 했다”며 “이러한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 조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한 것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따끔하게 꼬집었다.
결국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가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대통령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밝히며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을 선고했다.
◇나머지 사유에는 중대한 위반 없어=다른 탄핵사유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사실은 인정되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한 헌법적 위반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의 경우 대통령 지시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진재수 전 과장이 문책성 인사를 당했고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면직되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로 문체부 1급 공무원의 사직서가 제출된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최씨의 사익 추구에 방해됐기 때문에 인사 조처가 이뤄졌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봤다.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대통령이 압력을 행사하고 언론사 사장을 해임하도록 한 언론의 자유 침해 관련 부분도 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관심이 높았던 세월호와 관련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 성실수행의무 위반 사항도 탄핵 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 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위법이 없고 적법요건에 어떠한 흠결도 없다고 봤다. 8명의 재판관으로 사건을 심리하고 결정하는 것도 헌법과 법률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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