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금전만능의 세상에 맞서 인술과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했던 배우 한석규(53·사진)가 정반대의 악역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프리즌’에서 교도소 안에서도 교묘한 방법으로 번 막대한 돈으로 죄수들과 교도관을 수족처럼 부리며 악행을 일삼는 ‘교도소의 절대 권력자’ 익호 역을 맡은 그를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교도소 안에서는 익호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재소자들의 눈알을 빼서 씹어 먹었다는 등 무시무시한 소문이 가득하다. 한석규가 어떻게 자신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전혀 다른 잔인하기 그지없는 역할을 소화해냈을까. 그는 작품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는 “이거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부담감도 컸다고 털어놓았다. 캐릭터 분석을 위해 예전에 본 과학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고도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하이에나의 세계를 떠올렸어요. 모계사회인 하이에나 집단에서는 수컷이 무리에서 쫓겨나 공격당하는 일이 많은데 공격당한 뒤의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코가 찢기고 눈알이 빠질 정도인데도 살아남아서 다른
무리를 찾아 나서요. ‘저게 익호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연출을 맡은 나현 감독은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에서 ‘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를 떠올리면 영화 ‘프리즌’의 익호 캐릭터를 만들었다.
익호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교도소장에 앉힐 수 있고 자신에게 절대복종을 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충성의 대가는 상대방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할 만큼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그래서 재소자들은 익호의 편에 서서 따뜻하고 안락하게 지내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는다. ‘연기의 신’이라고 불리는 한석규답게 익호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은 날카로웠다. “익호는 마음만 먹으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이 돈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재미가 컸던 인물이죠. 자신이 쓰는 돈에 보이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 더 재미를 느꼈을 거예요.” 그러면서 한석규는 “익호 역시 교도소 안에 처음 왔을 때는 잡범이었을 것”이라며 “교도소 안의 환경이 그를 철저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악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김래원(송유건 분)에 대해 한석규는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래원이와 작업하면서 굉장히 성실하고 열심히 작업에 임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래원이도 이제 나이가 꽤 있는데 액션 신 찍을 때도 에너지가 무척 넘쳤어요.” 실제로 극 중에서 김래원과는 적대에서 협력으로 관계가 변하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감이 떠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진짜 정체와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둘 사이에 오가는 눈빛은 관객들의 심장을 천천히 조여가다 이내 폭발하기를 반복하며, 죽기 살기로 벌이는 둘 사이의 사투 또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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