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22일(현지시간) 불특정 다수를 노린 테러가 발생해 유럽 사회가 또다시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으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 개시와 프랑스 대통령선거 등 유럽의 중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유럽 내 반(反)이슬람 정서에 불을 지피며 최근 주춤했던 극우세력에 다시 힘이 실리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프랑스의 극우 대선 후보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는 “우리의 국경을 지켜야만 한다”며 이번 테러를 대선 승리를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영국 경찰 당국은 이날 런던 웨스트민스터궁을 노린 테러가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한 4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고 23일 발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진회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타고 오후2시40분께 웨스트민스터 다리의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들이받은 후 차량이 의사당 인근 난간에 충돌하자 차에서 내려 18~20㎝ 길이의 칼을 들고 웨스트민스터궁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차에 치인 민간인 2명과 칼에 찔린 경찰관 1명이 사망했다. 괴한은 의사당 입구에서 무장경찰의 총에 맞았으며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영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이 사건으로 한국인 관광객 1명이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4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IS는 자신들의 선전매체인 아마크통신에 “영국 의사당 앞에서 발생한 테러는 IS 전사의 소행”이라며 “그는 시민들을 공격하라는 지시에 따랐다”고 밝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의회에 출석해 “용의자는 영국 국적의 남성”이라며 이전에 극단주의 연관성이 의심돼 국내정보국(MI5)로부터 한 차례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혀 용의자가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라던 앞선 관측을 뒤집었다. 다만 메이 총리는 용의자가 조사 당시 지엽적인 인물로 판단돼 감시망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메이 총리는 자세한 용의자의 신원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지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용의자는 40대 아시아계 남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테러의 공격 대상과 수법은 IS의 전력과 유사했다. 일간 가디언은 관광명소인 웨스트민스터궁 근방에서 ‘소프트타깃(민간인 등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취약한 대상)’을 공격 대상으로 했다는 점과 차량으로 민간인을 들이받은 범행수법은 지난해 프랑스 니스, 독일 베를린 테러와 판박이라고 지적했다. 런던 경찰청은 이번 테러와 관련해 총 7명을 체포한 상태다.
IS가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면서 반이민·반이슬람 극우 정서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프랑스 학생 3명이 부상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통령선거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들은 이번 테러로 유럽 전역에 반이슬람 정서가 고조될 경우 지지율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극우성향 르펜 후보의 지지율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난민 수용을 요구하는 유럽연합(EU)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운 르펜 후보는 최근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전진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됐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지기반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브렉시트 협상을 준비 중인 영국과 EU가 안보를 중심으로 공조의 실마리를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영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테러 대응을 위한 유럽의 연합’을 촉구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도 영국 연방정부의 요청을 수락해 이날로 예정됐던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의결안 투표를 보류하는 등 테러 앞에서 영연방의 분열 행보도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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