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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와치] 요섹남이 대세? 요생남·요육남도 넘친다

'취준생' 남친이 앞치마를 두른 사연은...

취업난에 생계형 외식 창업 준비 늘고

육아 위해 요리 배우는 아빠도 잇따라

일부 요리학원 男 수강생이 절반 '훌쩍'

주방용품시장도 남성고객 '큰손' 부상

검은색 싱크대 등 男心겨냥 제품 봇물





서울에서 ‘창업 사관학교’로 소문난 서울 마포구의 한 요리학원. 강의실에 들어서자 지글지글 기름에 닭고기 튀겨지는 소리와 냄새가 오감을 자극했다. 여느 요리학원처럼 각종 조미료와 주방기기가 널려 있는 강의실에서 카키색 방한 내피, 이른바 ‘깔깔이’를 입고 수업에 열중하는 문덕영(31)씨의 모습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문씨는 “평소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면서도 “창업을 준비 중인데 닭강정이나 핫도그 같은 간단한 요리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강 신청을 했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태국으로 건너가 닭강정 장사를 할 생각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삼시세끼’ 등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요리하는 남성이 인기를 끌면서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열풍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자기관리에 능하고 멋진 남성으로 여겨졌던 요섹남이 다소 주춤하는 대신 절박하게 요리하는 ‘요생남(요리를 생업으로 삼는 남자)’과 ‘요육남(요리로 육아하는 남성)’이 요섹남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장기불황에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과 중년, 육아가 시대적 과제가 된 남성 등이 요생남과 요육남의 주역이다. 요섹남에 더해져 요생남·요육남까지 등장하면서 요리학원은 ‘아재향’으로 가득하다. 지난 23일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다수의 요리학원과 학교에는 남자 수강생 비율이 50%를 넘었다.

◇“요리는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법”=그동안 요리하는 남자는 미디어에서 재력과 여유를 가진 멋진 남성의 전형으로 다뤄졌다. 여성들은 이들 초보 셰프에게 크게 호응했고 남성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멋진 남성이 되기 위해 요리학원·학교를 찾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2016 진로교육 현황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생이 선호하는 직업의 상위권에 모두 요리사가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요섹남을 꿈꾸며 요리학원을 찾았던 남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요생남이다. 이들은 요리를 배우는 것을 멋이 아닌 일용근로자처럼 고되고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대직업전문학교 호텔조리학과에 재학 중인 안지훈(25)씨는 “1학년 때 요리를 배우러 오는 사람 가운데 멋있어 보여 온다는 사람도 다수 있는데 몇 달도 안 돼 나가떨어진다”며 “요리를 평생 업으로 삼고 살겠다는 강한 정신무장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것이 요리공부”라고 말했다.

요리교육 업계에서는 이탈률이 적은 요생남 수요를 일찌감치 눈여겨본 기관도 다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창업요리학원이다. 청년실업난이 심해지면서 취업이 어려운 청년층과 퇴직 후 재취업에 실패한 장년층이 비교적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요식업계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65만1,866명이었던 음식업 종사자 수는 2014년 68만886명, 2015년 70만7,801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건축설계사인 이모(45)씨는 “40대가 되면 직장에서 위아래로 치이는 나이인데 스트레스도 심하고 가정에 들어가는 비용도 많다”며 “경쟁이 심한 서울을 피해 강원도에 커피전문점을 차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창업의 꿈을 위해 일과 요리학원을 오가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문유덕 스타트업창업요리학원 대표는 “프랜차이즈 가맹을 하려면 과도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핫도그 같은 분식 요리는 규모가 작아 소자본으로 창업하기에 용이하다”며 “요리학원 시장에서 소규모 외식창업 교육에 대한 수요가 최근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아이를 위해 프라이팬을 든 남자들=사상 최악의 저출산 시대, 보육대란 시대에 요리를 통해 육아를 하며 가정을 이끌어가는 남성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요리강의를 하는 쿠킹 스튜디오 백설요리원에는 2011년부터 올 2월까지 6년간 3만여명이 다녀갔다. 백설요리원은 스타 셰프와 전문강사들이 오전과 오후 시간대로 나눠 주 7회, 월평균 30회가량 수업을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이다. CJ제일제당의 한 관계자는 “아이와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싶어하는 남성들이 심심찮게 요리원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쿠킹 클래스는 클래스당 18명이 참여할 수 있는데 매회 200명 이상의 신청자가 몰리며 두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인기가 높다.



아들과 함께 요리수업을 들은 채민수(40)씨는 “놀이동산 등 야외에 나가기보다는 조용한 장소에서 아이와 마주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요리도 만들면서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업을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요리를 함께 만들며 아빠는 어렵고 근엄한 가장이 아닌 같이 대화하고 놀아주며 소통하는 친구 같은 존재라는 이미지가 많아졌다”며 웃었다. 직장인 이희섭(38)씨도 “아이와 함께 요리를 한다는 게 단순히 아이와 노는 것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이와 함께 만든 요리를 먹으면 특별한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남성 주방용품 시장도 ‘들썩’=생계와 육아 등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 보기 좋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방용품에 투자하는 남성이 늘었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 옥션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남성의 주방용품 구매율이 전년보다 13% 증가했다. 요리하는 남성이 늘면서 삼각김밥·샌드위치·붕어빵 등 집에서 직접 간식을 만들 수 있는 홈메이드 제조기의 구매 증가율이 112%에 달해 요리에 대한 남성의 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 다른 인터넷 쇼핑몰인 G마켓 역시 남성의 주방용품 구매율이 전년보다 14% 늘었다. 특히 최근 6개월 동안 주방·식기 상품군에서 20~30대 남성 고객들의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

업계는 주방·식기 상품군에서 젊은 남성 고객들이 큰손으로 부상하자 이들을 겨냥한 관련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40~50대 주부의 전유물이었던 싱크대 디자인도 남성의 관심을 반영해 이들이 선호하는 회색·검은색·청록색 제품이 등장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남성들이 요리에 도전하는 ‘쿡방’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를 끌며 주방용품에 대한 남성의 구매율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일상생활에서 요리를 즐기는 남성들이 늘어나며 주방도구나 소품·가전 등의 구매 품목도 세분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의 식지 않는 요리 열기는 1인 가구의 급증과 관계 단절에 따른 유대관계 약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밥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현대사회에서는 이를 충족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요리를 하며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남성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주고 자존감도 키우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박우인·박진용·박우현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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