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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그리는 母情·간절한 孝心이 마주한 눈길에 흐르네

화재 변상벽 '묘작도'

검은 털끝에 윤기 흐르는 고양이

뾰족한 귀 속살까지 화폭에 담아

일상 속 특별함 발견 진리 실천

화재 변상벽 ‘묘작도(猫雀圖)’, 18세기 조선 그림으로 크기는 93.9×43.0cm,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를 삼원삼재(三圓三齋)라 하여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과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을 꼽는다. 이를 ‘삼원사재(三圓四齋)’라 고쳐 칭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이 사람, 화재(和齋) 변상벽을 놓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동물 그림인 영모도에 뛰어났고 그중에서도 고양이와 닭을 어찌나 잘 그렸는지 ‘변고양이’, ‘변닭’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화가다.

고양이 두 마리와 참새 여섯 마리를 그린 ‘묘작도(猫雀圖)’가 변상벽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묘(猫)는 70세를 지칭하는 모(늙을 로 老 +털 모 毛)와 중국어 발음이 같아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다. 참새 작(雀) 자는 까치 작(鵲) 자와 더불어 그 음이 벼슬 작(爵) 자와 같기 때문에 장원급제와 출세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그 자체로 무병장수와 부귀공명을 축수한다. 고양이가 참새를 바라보는 구도이기에 오래 사신 늙은 부모님이 자녀들의 출세를 바란다는 것으로도 풀이하는 이도 있다. 게다가 고양이는 책을 갉아먹는 쥐의 천적이기에 선비들은 이런 고양이 그림을 방에 걸어두곤 했다.

나무 밑에 앉아 위를 치켜 보는 고양이의 검은 털끝에서 자르르 윤기가 흐른다. 터럭 한 올까지 생생하게 일호일발(一毫一髮)도 틀리지 않게 그리려 한 조선 시대 묘사력의 성실함과 출중함이 어디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만 있겠는가. 변상벽은 검은색과 회색이 교차하는 털의 표현을 위해 붓을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다. 다소곳이 앉은 검은 고양이의 둥글고 새초롬한 발가락과 달리 나무를 타고 오르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의 발가락은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세워 긴장감이 역력하다. 힘주어 나무를 오르는 뒷다리 근육의 팽팽함이 손끝에 닿는 듯하다. 화가는 도도한 고양이의 하얀 콧수염에, 번뜩이는 노란 눈동자 뿐 아니라 말랑하고 축축한 콧구멍에다, 심지어 뾰족한 귀 속살까지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았다.

조선 시대 후기인 18세기 영조 재위기에 활동한 것으로 미루어 변상벽은 대략 1726년 이전 태어나 1775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생몰연도가 기록으로 전하지는 않는다. 약관에 이미 왕실 그림을 전담하던 도화서 화원이 된 그는 이른바 국가대표급 화가인 국수(國手)가 되었고 도화서 후배인 김홍도와 함께 당대 최고의 화원만이 맡을 수 있었던 왕의 초상, 즉 영조의 어진(御眞)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 변상벽이 용안(왕의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는 용신(왕의 몸)을 맡았다. 변상벽은 어진을 잘 그린 공으로 현감직 벼슬을 받았다.

그런 변상벽은 왜 그토록 고양이를 그렸을까? 일각에서는 조선 중후기 왕실을 중심으로 고양이를 기르는 ‘애묘’ 문화가 발달해 의뢰가 많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이 금묘(金猫)라는 고양이를 애지중지 길렀다는 기록이 전할 정도로 고양이는 왕족의 깊은 사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가로서의 결단도 적잖이 작용한 듯하다. 도화서 화원에도 나름의 서열이 있었는데 산수 분야의 등급이 가장 높고 짐승을 묘사하는 ‘영모’와 사람을 그리는 ‘초상’이 그다음이었다. 변상벽도 처음에는 산수화를 열심히 그렸지만 “지금의 화가를 압도해 그 위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소재를 바꿨고 “고양이는 사람과 친근하기 때문에 관찰을 통해 익숙해질 수 있으며 생리(生理)를 깨치고 그 모습을 익히면 그 형태를 자연히 그릴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유심히 살펴본 일상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는 진리를 실천한 셈이다. 전해지는 그의 영모화조화가 총 34점인데 그중 고양이 그림이 15점, 닭을 소재로 한 것이 14점이나 된다.

강세황과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호암미술관 소장. /서울경제DB


그림 속 고양이가 사진처럼 생생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나무는 대충 그린 듯 매우 거칠게 표현됐다. 세밀함과 대범함의 조화를 따져, 부드러운 세련미를 노린 까닭이다. 이 같은 느낌은 소장한 조선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며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송하맹호도’에서나 경험할 수 있다. 김홍도가 섬세한 필치로 그린 호랑이와 강세황이 호방하게 그린 소나무가 하나의 화폭을 채우고 있는데, 변상벽은 이를 혼자 구현한 것이다.

변상벽 ‘계도(鷄圖)’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봄을 희롱하는 분위기는 변상벽의 닭 그림 또한 고양이 못지않다. 중국·일본 닭과 확연히 다른 토종닭임을 강조해 닭 깃털을 부위별로 달리 표현한 것에서 화가의 기량이 돋보인다. 노란 병아리들의 삐악거리는 소리가 봄을 노래한다. 어미 닭이 벌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다가오자 병아리들은 입맛을 다시며 모여든다. 새끼들 모두 배불리 먹이고 싶은 어미 마음이야 오죽하겠냐만 그 중 딱 한 마리, 엄마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말없이 제 차례를 알고 다가서는 순간이다.

변상벽의 닭과 고양이 그림을 본 실학자 정약용은 다소 호들갑스러운 시(詩)를 ‘여유당전서’에 적었다.



“변상벽을 변고양이라고 부르듯이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하네.

이번에 다시 닭과 병아리의 그림을 보니 마리마다 살아있는 듯하네.

(중략) 형형의 세세 묘사가 핍진하고 도도한 기운이 생동하네.

후문에 듣건대 처음 그릴 때 수탉이 오인할 정도였다네.

역시 그가 고양이를 그렸을 때 쥐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뛰어난 솜씨 그런 경지에 이르니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네.

못된 화가들이 산수를 그리면서 거친 필치만 보여주네.”

마침 작품들이 새롭게 회화실을 개편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 걸렸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변상벽 ‘자웅장추(雌雄將雛)’, 암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린다는 내용의 그림으로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서울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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