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은데 아이들을 밖에서 놀게 하고 싶지만 담배 연기 때문에 할 수가 없어요.”
지난달 3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만난 서울 여의도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 바로 뒤쪽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어린이집은 금연 건물이지만 10m 떨어진 곳에서의 흡연은 불법이 아니라 많은 직장인이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당신의 한 개비가 모여 우리에게는 한 시간에 한 갑, 하루에 열 갑이 넘어요’라는 현수막까지 내걸었지만 무용지물이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식사를 마친 넥타이 부대가 대거 몰려들어 훨씬 더 많은 담배 연기가 어린이집으로 흘러들어왔다. 어린이집은 이날도 담배 연기를 막기 위해 창문을 굳게 닫았다. 어린이집 선생님 이모(30)씨는 “야외활동은 아이의 정서 조절에 무척 중요한데 밀폐된 실내에 장시간 있으면 아이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해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고 걱정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도 ‘민폐 흡연’은 여전하다. 병원은 모든 지역이 금연구역이지만 밤이 되면 병문안을 온 사람들과 간병인을 비롯해 심지어 환자복을 입은 입원환자들까지 병원 구석 곳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실제 같은 날 종로구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어둠이 짙게 깔리자 암센터와 본관 사이 공원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목격됐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환자복을 입은 입원환자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밤이 되자 장례식장 뒤편 화단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지영(42)씨는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서까지 간접흡연을 하게 되니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프로야구가 개막해 수많은 사람이 찾는 야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1일 두산베어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 홈플레이트 뒤편 상단의 네이비 지정석은 흡연자들 사이에서 소문난 명당이다. 좌석에서 불과 2m 거리에 흡연부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흡연부스 밖에서도 담배를 피우기 때문. 이날도 4회 말 두산의 공격이 끝나자 멀쩡한 흡연부스를 두고 경기장 외벽을 따라 20여명이 늘어서 담배를 피웠다. 잠실야구장 관리직원인 김재한(17)씨가 “흡연부스 안에서 피워달라”고 외치며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말을 듣지 않았다. 흡연자들과 가까이서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나온 엄마들은 연신 손을 흔들며 담배 냄새를 피하기 바빴다. 네이비 지정석에서 야구를 보던 이현준씨(27)는 “지난해에만 잠실야구장에 34번 왔는데 변하지 않는다”며 “지난번에는 너무 화가 나서 흡연부스로 들어가라고 소리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달 30일 오후5시께 서울역 출구 앞은 거대한 흡연부스와 다름없었다. 가로 10m, 세로 3m 크기의 흡연부스가 마련돼 있었으나 부스 앞 10m 인근에서 30여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부스를 이용하는 흡연자는 단 8명뿐. 부스 출입문 두 개는 아예 열린 채로 고정돼 있었다. 화생방 훈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열차에서 내려 서울역을 나서는 가족들 중 어린이를 비롯한 비흡연자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가리고 종종걸음을 내달렸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서미옥(37)씨는 “서울역에 도착한 첫인상이 엄청난 담배 연기라니 참 답답하다”며 “담배 냄새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토가 나올 것 같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박우인·김우보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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