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국책연구기관장들이 미리 본 새 정부의 경제환경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에서 한국은 중국에도 추월당하면서 후진국이 됐다. 국내 제조업종의 셋 중 하나는 공급과잉을 맞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수출 비중도 중국이 2위로 급등한 반면 한국은 13위에 머물렀다. 질적 성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기 초반은 중국의 무역 압박과 국내 좀비기업·가계 문제에 봉착하고 임기 후반은 미국 경기 불투명성이라는 대외 악재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 재정은 연간 수십조원씩으로 추정되는 공약이행용 지출을 감당하기에 벅차 증세를 두고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재정과 금융·제도개혁·외교력을 총동원해 총력전을 펴야 한다는 게 5대 국책연구원장들의 진단이다. 토론회는 서울경제신문의 후원으로 한강서사이어티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했다.
◇신진대사 둔화된 경제…중국에도 뒤진 산업경쟁력=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역동성을 잃은 우리 경제의 난맥을 조목조목 짚었다. 김 원장은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 경제는 좀비기업의 퇴출과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 모두 부진해 신진대사가 둔화된 상태”라며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사회계층 간 이동성도 떨어지면서 사회갈등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역할에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우리나라 정부의 규제 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서도 높은 편이고 질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교체를 앞두고 대한민국 산업이 총체적인 생존위기를 맞고 있다. 유병규 한국산업연구원장은 “우리나라 공급과잉 업종이 전체 (제조업종) 산업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그래서 한계기업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투자했던 신성장동력 분야가 제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마저 여전히 2%대에 머물러 한국 산업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구조적 재앙요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출상품에서 고부가가치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중국에 완전히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해당 비중의 순위가 1995년 16위에서 2015년 13위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20위에서 2위로 급등했다는 게 유 원장의 전언이다.
◇4차 산업혁명 외치지만 규제도 못 없애는 현실=연구원장들은 우리나라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스마트 헬스케어 등 사회·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 원장은 “스위스 금융그룹 UBS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도는 45개국 중 25위에 그친다”며 “정보통신기술 인프라는 우수하지만 서비스 규제, 경직된 노동시장, 데이터 활용 제한 등으로 장점을 못 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자율주행차의 경우 전용도로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인프라 구축과 함께 규제와 교육개혁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기술 등을 활용한 제조업과 서비스의 융합에서도 한국은 이미 후발국이 돼버렸다. 김 원장은 “전체 제조업체 중 서비스업에서도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의 비중인 ‘제조업의 서비스화 비율’은 미국이 가장 앞서 50% 이상이지만 한국은 17%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은 해당 비율이 2007년 거의 0%에 가까웠으나 현재는 20%를 넘어섰다”며 “한국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융합에서 이미 중국에 뒤졌다”고 우려했다. 김 원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규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하드웨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췄지만 (규제의) 칸막이 때문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하지 못해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가로막고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부담, 통상, 가계부채 문제 ‘암초’=주요 대선후보들은 당면한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재정 지출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대규모 재정 지출을 뒷받침할 증세를 하려면 중장기적인 그림을 먼저 그리고 포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조세 부담이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신뢰도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한 증세는 더 큰 사회적 논란만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나 고소득자 일부만을 겨냥한 증세만으로는 대규모 복지, 일자리 공약 재원 충당이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뿐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통상 규제, 중국의 사드 보복은 우리 경제 회복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중국의 사드 보복은 올해 주요 정치일정 속에서 시진핑 주석의 1인체제 강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어 장기화가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현재 국내에 전개돼 있는 사드가 실제로 배치되는 시기와 올가을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를 중국 사드 보복 강도 변화의 중대기점으로 점쳤다. 그는 “중국은 자국 내 정치전략 차원에서라도 최소 1~2년은 사드 보복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한국이 중국의 최대 중간재 공급 국가로서 중국 산업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 중국 수출에 대한 기여가 연간 1,200억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해 사드 보복이 중국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설득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소득·자산 수준이 모두 낮은 취약계층의 금융부채가 문제”라며 “16조~17조원에 이르는 취약계층의 금융부채는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집중적인 금융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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