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수십조원씩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충당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며 범위도 일부 세목 등에만 한정돼서는 부족하다는 국책연구기관장의 진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오는 5월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종 포퓰리즘식 재정지출 방안을 쏟아내는 주요 후보들은 집권시 강력한 조세저항을 감내하거나 공약을 축소, 포기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은 21일 싱크탱크인 한강서사이어티(이사장 채수찬, 서경펠로)가 서울경제신문 후원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5대 국책연구기관장 초청 토론회에서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재정이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를 묻는 청중의 질문에 “일자리·복지 지출 규모를 감안한다면 상당한 규모의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원장은 “현재 정치권에서 (대통령선거 공약 차원에서) 논의되는 추가 재정투입을 통한 정부 지출 강화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큰 그림인 것 같다”며 “재정 소요가 연간 20조~40조원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우려했다. 이어 임기응변식 증세나 특정 세목, 특정 계층에게 집중된 증세보다는 세제 전반에 걸친 보다 포괄적인 세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증세 때도 세제 형평성을 감안해야 하고 경제와 국민이 감내할 만한 속도와 그림을 가지고 포괄적인 증세안을 만들어 증세를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권력교체기 한국 경제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박 원장은 “대규모 재정지출을 뒷받침할 만한 증세를 하려면 중장기적인 그림을 먼저 그리고 포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세부담이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신뢰도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한 증세는 더 큰 사회적 논란만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나 고소득자 일부만 겨냥한 증세로는 대규모 복지·일자리 공약 재원 충당이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현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자연적인 세수증가분으로 공약 재원이 충당되지 않을 경우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부동산임대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후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등을 공약한 상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많이 버는 사람에게 더 많이 과세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며 고소득자 중심의 증세 방침을 천명했다. /민병권·서민준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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