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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같은 오페라, 관객 눈·귀 홀렸다

■ 리뷰 '오를란도 핀토 파쵸'

탄탄한 연출·익살스런 연기로

작품 완성도·재미 둘다 잡아

정규 레퍼토리로 안착 성공

국립오페라단의 바로크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의 마지막 장면. 무대디자이너 오필영은 시계와 거울로 바로크 시대를 지배하는 마녀 에르실라의 세계를 무대로 표현했다.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막이 오른다. 시계의 내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이 열린다. 보랏빛으로 물든 세계. 테오르보, 호른 등 바로크 악기가 어우러진 독특한 음악이 청중을 곧바로 현실의 세계에서 떼어놓는다. 170분간 이어지는 역동적인 무대는 종합예술이라는 오페라의 매력을 다시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국립오페라단의 바로크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 마지막 장면에서 마녀 에르실라 역의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롬바르디 마출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지난 10~14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국립오페라단의 바로크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8-9세기에 걸쳐 서유럽의 통일을 이끌고 황제에 즉위했던 샤를 대제의 12 기사 중 한 사람인 오를란도를 주인공으로 한다. 오를란도가 사랑하는 여인 안젤리카의 명을 받아 마법의 여왕 에르실라의 성으로 찾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현자 브란디마르테와 그의 수행기사 그리포네, 그리포네의 전 여자친구인 오리질레, 에르실라의 마술 물약을 담당하는 무녀 티그린다 등이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은 7각 관계에까지 이른다.

카운터테너 정시만이 국립오페라단의 바로크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 무대에서 그리포네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의상디자이너 주세페 팔렐라는 미드나이트 블루와 보라색 의상으로 에르실라의 마법 세계를 표현했다.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비현실적인 소재와 복잡한 인물 관계는 현대화 작업을 거쳐 매끄러워졌다. 본래 3막의 오페라인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등장인물들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복잡하고 스토리 전개를 설명하는 레치타티보가 많은 작품이다. 그러나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는 많은 장면과 대사,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삭제했고 음악 순서와 이야기를 수정하며 압축적이면서도 납득 가능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뮤지컬 수준의 역동적인 동작과 익살스러운 연기, 화려한 무대와 의상으로 채운 덕에 오페라를 처음 접한 이들도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바로크 전문 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의 연주, 특히 바로크 악기인 테오르보 악기 소리가 무대 전체에 신비감을 더했다.

비발디가 작품 활동을 하던 18세기 초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받은 무대 의상은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디자이너 주세페 팔렐라는 커다란 치마와 흉갑, 날개 장식 등 겹겹이 화려한 장식으로 완성한 의상을 만들어냈고 환상과 기묘함이라는 바로크 특유의 스타일을 구현했다. 특히 미드나이트블루와 보라색으로 꾸민 마녀 에르실라의 의상은 공연 내내 눈길을 끌었고 특히 천장으로 솟아오르며 에르실라가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에선 그림 같은 무대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은 ‘오를란도 핀토 파쵸’의 무대를 거대한 시계 속 태엽이 맞물린 세계로 표현했다.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이번 공연부터 합류한 오를란도 역의 베이스 바리톤 우경식은 뛰어난 성량과 음색에 더해 연기력, 수려한 외모까지 돋보였다. 무엇보다 무대의 매력을 더한 것은 가장 어려운 아리아들을 소화하며 관객들을 전율시켰던 카운터테너들. 살아있는 청동상 아르질라노 역의 이동규는 능청스러운 연기로 객석의 웃음을 끌어냈고 그리포네 역의 정시만은 맑고 선명한 음색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특히 정시만은 국내 카운터테너 가운데 최초로 다음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데뷔를 앞두고 있는 주목받는 가수다.

아르질라노 역의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에르실라 역의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롬바르디 마출리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마녀 에르실라가 사라진 세상을 조명으로 표현했다.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이 시즌 레퍼토리로 바로크 오페라를 선보이기로 하면서 바로크 오페라의 대명사인 헨델 대신 비발디, 비발디의 오페라 가운데서도 잘 알려진 ‘오를란도 푸리오조’ 대신 ‘오를란도 핀토 파쵸’를 택한 데 대해 의아한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개막 직후 이 같은 우려는 눈 녹듯 사라졌고 압축적이면서도 논리적인 대본 수정과 독특한 무대 디자인과 소품 등을 활용한 탄탄한 연출력에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재연 무대를 거쳐 해외에서도 거의 접하기 어려운 ‘오를란도 핀토 파쵸’를 정규 레퍼토리로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공연예술 장르 가운데서도 특히 비용이 많이 드는 오페라 공연이 재연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고 고정 팬을 확보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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