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금남면 일대는 요즘 모내기가 한창이다. 경기·충남·전남 지역의 극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충남과 인접해 있는 이곳에서 모내기가 가능한 것은 인근에 자리한 원봉양수장 덕분이다. 원봉리 농민들은 원봉양수장이 퍼올린 공주보 상류의 금강 물로 농사를 짓는다. 농민 김모(71)씨는 4일 “뉴스를 보면 가뭄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는 모내기를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까이 있는 금강 물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의 물을 활용할 수 있는 양수시설과 거리가 먼 당진·서산시 등 충남 서부지역 사정은 이와는 딴판이다. 저수지 바로 옆 논마저 아직 모내기를 못한 곳이 있는가 하면 모내기를 마쳤지만 모가 노랗게 타들어가는 염해를 입은 곳도 있다. 비가 내리지 않아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거나 토양과 물의 염분이 높아진 탓이다.
충남 서부지역의 유일한 상수원인 보령댐은 낮은 저수율에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의 공급 차질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 보령댐이 제한급수에 들어가지 않고 버틴 것도 지난 3월25일 저수량이 14.3%까지 떨어지며 경보 단계가 ‘경계’로 격상된 뒤 금강 물을 도수로를 통해 매일 11만5,000톤씩 끌어왔기 때문이라는 게 충남도의 설명이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는 “현재 가뭄이 심각한 지역은 4대강 16개 보와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며 “보와 인접한 곳은 가뭄 피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보의 물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수준의 가뭄은 극복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4대강 16개 보와 댐과 저수지를 잇는 긴 거리의 도수로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현재 가동 중인 도수로는 백제보와 보령댐을 잇는 21.9㎞ 도수로가 유일하다. 공주보와 예당지를 연결하는 28.3㎞의 도수로가 건설 중이지만 아직 가동되지는 않은 상태다. 가뭄 피해 지역의 농민들이 보에 가득 차 있는 물을 보고 ‘저렇게 물이 많은데’라며 한숨짓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자 전문가들은 가뭄이 극심한데도 4대강 보에 차 있는 물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정상만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정치적으로 4대강 사업이 싫다고 해서 있는 물도 안 끌어쓰고 이러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며 “저장해놓은 물이 수질이 나쁘다면 (정수) 처리해서라도 쓸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도수로 건설의 경제성 논란과 관련해서는 “모든 지역에 다 (4대강 물을) 끌어다 쓰려고 하지 말고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데까지만 도수로를 연결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대강 물의 활용도 제고와 함께 가장 현실적인 가뭄 대응방안으로 손꼽히는 물 재이용 역시 원활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하수처리수 재이용량은 10억2,746만톤으로 재이용률은 14.7%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절반 이상(51.7%)은 청소·조경 등의 목적으로 하수처리장 내에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50% 이상의 하수처리수를 재이용하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등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물 재이용 사업이 이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분석된다.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가 주로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이뤄지는 물 재이용 사업의 민자 적격성을 조사할 때 환경 편익을 비중 있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PIMAC가 내놓은 수요 중복 의견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PIMAC는 용수공급 계획을 이미 수립해둔 산업단지를 수요처로 하면 물 재이용 사업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있어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업장 수만 십수 개에 이른다”며 “부적격 판정 사례를 보고 지레 사업을 접은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가뭄 해소와 수자원 확보 차원에서 물 재이용률은 반드시 높일 필요가 있다”며 “물 재이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용수공급 계획 수립 단계에서 물 재이용 분량을 배정하거나 이미 계획이 수립돼 있더라도 수요처를 재배분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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