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방송되는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에서는 ‘제주도 - 1부 탐라의 눈물’ 편이 전파를 탄다.
▲ 귤, 조정의 기쁨? 제주의 눈물!
지금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흔한 과일 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귤은 임금마저 애타게 찾던 귀한 몸이었다. 제주의 귤은 오래전부터 기록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고, 조선시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조정에 진상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 시기 내내 귤에 관한 다양한 일화가 전해진다. 우리에게 폭군으로 익숙한 연산군은 수확시기가 지난 후에 “귤을 가지 채로 잘라 보내라”는 명을 내린 적이 있었고, 성균관 유생들은 더 많은 귤을 먹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귤을 향한 조정의 애정이 높아질수록, 제주도민들의 부담도 커져갔다. 풍작과 흉작에 관계없이 일정한 양의 귤을 바쳐야했던 제주도민들. 그들의 눈물 담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18세기 초,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제주를 돌아다니며 <탐라순력도>라는 기록을 남긴다. <탐라순력도>는 제주의 여러 행사 장면을 기록한 채색 화첩으로, 여기엔 목사가 진상에 올릴 말을 점검하고 있는 ‘공마봉진’이라는 그림이 담겨있다.
말이 제주의 대표 진상품 중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편 제주의 말은 조선 조정뿐만 아니라 명나라에서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제주 최대의 말 경영자 ‘김만일’이 명나라에 말을 보내지 않기 위해 감행한 특단의 조치는 무엇일까?
▲ 제주, 유배의 아이콘이 되다
제주도민들이 귤과 말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면, 반대로 제주도 때문에 눈물 흘린 이들도 있었다. 바로 유배객들이었다. 제주는 조선시대 한양에서 제일 먼 곳이었기 때문에 유배에 최적화된 장소로 여겨졌다. 이에 조선시대 내내 2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제주로 유배를 갔다.
그들 가운데에는 84세 고령의 신임(조선 경종대의 문신), 4세의 석견(소현세자의 아들), 폐주 광해군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유배객은 단연 추사 김정희다. 김정희는 제주 유배지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국보 제180호 세한도를 그렸다. 바로 그 집에서 최태성, 이윤석은 뜻밖의 인간적인 김정희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