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통합의 가치를 지지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영향력은 상승곡선을 그리는 반면 ‘하드 브렉시트(유럽연합과의 완전한 결별, Hard Brexit)’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내외의 위기에 직면했다.
분열된 프랑스 사회 재건과 유럽연합(EU) 통합을 내걸고 등장한 마크롱 대통령은 11일 총선에서 행정부와 의회를 아우르는 ‘절대권력’을 갖는 것이 확실시된다. 프랑스 하원의원을 뽑는 이날 총선 1차 투표와 18일 2차 투표에서 그가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당, LRM)’가 전체 577석에서 400석 안팎을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8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일간지 르몽드와 함께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신당 의석 수를 최대 425석으로 점치기도 했다. 지난달 대선 승리에 이어 신임 대통령이 이끄는 신예 정당이 기성 정치권을 꺾고 2연승의 파죽지세를 기록하는 셈이다. 이는 당초 프랑스 의회에서 새 대통령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던 전망과 상반된 결과다.
마크롱 대통령의 상승세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돌출행동과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정국에서 다른 국가들을 규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대내적 상승세에 대외적 인지도가 함께 오르며 ‘스트롱 마크롱’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크롱의 인기는 5월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그와 맞붙었던 마린 르펜 대표가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예상 의석 수(8~18석)와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 우선주의’의 일방적 리더십을 앞세워 대선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르펜 대표의 야심은 임기 초반 마크롱 대통령의 인기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메르켈 독일 총리의 입지도 여전히 탄탄하다. 9일 인트라테스트디마프가 독일 공영방송 ARD와 공동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연합(CDU)과 기독사회연합(CSU)의 지지율은 38%로 라이벌 마르틴 슐츠 대표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U)의 24%를 크게 앞섰다. 특히 SPU의 지지율이 지난달보다 3%포인트 하락한 반면 CDU·CSU의 지지율은 같은 기간 1%포인트 오르면서 메르켈 총리의 총선 승리와 4연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와 달리 8일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상실하며 리더십이 심각하게 손상된 메이 총리는 갈수록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10일 메이 총리는 소수 측근 위주의 정치가 총선 실패의 한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최측근인 닉 티머시, 피오나 힐 총리실 공동비서실장을 경질했다. 하지만 소속 정당인 보수당에서조차 6개월 후에는 총리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당 블로그인 ‘보수당홈’이 보수당원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가 소수당 정부 구성에 돌입한 메이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총리가 고집해온 ‘하드 브렉시트’도 국민적 부동의로 힘이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민심도 독립 투표를 예고한 스코틀랜드 국민당(SNP)과 브렉시트 반대파인 자유민주당(LD) 모두에 좌절을 안기며 일방통행적 리더십에 대한 경계를 드러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또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의회 증언으로 탄핵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등 살얼음판을 걷기는 마찬가지다. 1일 파리기후협정 전격 탈퇴를 선언하고 카타르 단교 사태를 배후에서 부추기는 등 미국 이익 지키기에 골몰하는 모습으로 국정지지율도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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