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노조가 새 정부의 적폐청산에 편승해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것 같습니다. 정권 초기에는 어김없이 춘·하투가 벌어지는데 올해는 친(親)노동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별반 다른 것은 없어 보입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을 보면 더 거셀 것으로 예상됩니다.”(정부의 한 관계자)
강성노조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든 노동계를 대화의 테이블에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무리한 요구사항을 내놓으며 정부와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김완일 한양대 겸임교수(한국세법학회 부회장)는 “현재 국내 경제가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부가 노동계 입장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노동계가 너무 빨리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전문가의 이 같은 지적처럼 노동계에 양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올 초에 일정을 짠 대로 이달 말 파업을 강행할 태세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통해 오는 29~30일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건설노조 등 여러 산별노조도 파업 참여를 위해 투표를 진행하고 있거나 참여하기로 이미 가닥을 잡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구태가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행태는 강성노조의 대표주자인 현대자동차 노조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현대차는 올 1·4분기 1조2,50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8% 하락한 수준으로 국제회계기준(IFRS)이 적용된 지난 2010년 이후 1·4분기 기준 최저치다. 판매량은 108만9,600대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심화, 대규모 리콜 등의 악재가 겹겹이 도사리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대차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대차 노조는 2017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진행하면서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과 순이익 30% 등을 담은 요구안을 교섭 테이블에 내놓고 있다. 이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지면 사측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총 1조9,000억원이다. 조합원 1인당 평균 3,000만원이 돌아갈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차 노조 조합원들의 평균 연봉은 이미 1억원에 가까운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 총액은 150만원으로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 총액인 339만3,0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규직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시스템산업연구실장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강성노조 탓에 노동 유연성과 생산성이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며 “노조 내부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강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의 무리한 요구는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의 장에서도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대 노총은 당장 내년부터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위원회 일부 근로자 위원들은 1만원보다 더 많은 금액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분위기다.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15일 최저임금위 전체회의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1만원도 적다”는 취지로 말한다고 강조했다.
산별노조들은 산별노조대로 요구사항을 내놓고 있다. 건설노조는 불법 하도급 근절, 내국인 노동자 고용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민주노총의 일정에 맞춰 파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 지회는 이달에 이미 스스로의 고용보장을 위한 부분파업을 벌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가 중국으로 팔려갈 판에 노조는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면서 “금속노조가 재벌개혁을 부르짖고 있는데 진짜 청산해야 할 적폐 대상은 파업을 일삼는 전투적 강성노조”라고 비판했다.
양대 노총은 근로자들의 권익 신장뿐 아니라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한미 당국이 사드를 이 땅에 배치하려는 것은 법적 근거도 없이 추진되는 것으로 원천무효”라며 “사드 배치와 관련된 정부의 행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편법이며 불의”라고 강조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의 영향력과 힘의 근저에는 국민들의 지지가 있다. 노조의 요구가 국민들 시선에서 합리적이어야만 하는 이유”라며 “문재인 정부가 모처럼 노동판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강경 투쟁으로 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는 조급하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어내고 바꾸려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변화를 만들어가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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