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미국 동부시간) 미국 순방길에서 북핵 폐기를 위한 ‘행동 대 행동 교환’ 원칙을 밝힌 것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 중임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중단하고 전향적인 행동에 나설 때마다 상응하는 보상을 단계적으로 제공해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문 대통령은 핵 동결과 한미 훈련 축소는 연계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밝힌 북핵 해결의 로드맵은 ‘북핵 동결→이행 검증→한미 보상→핵시설 폐기→핵물질·무기 폐기’로 요약된다. 북측이 이들 각 단계를 이행할 때마다 한국과 미국이 인센티브를 제공해 다음 단계로의 발전을 유도한다는 개념이다. 대신 북한이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핵 개발에 나설 경우 국제사회의 강력한 조치가 뒤따르게 된다.
이 같은 로드맵 실행의 최소 조건은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도발 중단과 핵 동결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핵 동결이 이뤄져야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어 “핵 동결이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라면서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핵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돼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명분을 주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이 핵 동결→핵 완전폐기로 이어지는 2단계 해법에 합의했다가 파기할 경우 과거와 같이 ‘도발→보상→합의→파기’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수행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북핵 해법 등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최종 조율했다. 두 장관은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고히 견지하고 앞으로 긴밀한 공조를 통해 공동전략을 구체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백악관 측에서도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대응 공조에 대해 청신호가 나오고 있다.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이날 전화를 통한 언론 브리핑을 통해 대북 관여 정책으로 지칭 되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조건이 적절하면 관여하지만 조건이 맞을 때까지 압박을 유지하고 강화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접근법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접근법”이라며 “우리는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해 편안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이번 행동 대 행동 교환 원칙 발언이 대북 유화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상 핵 개발 등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아직은 대화보다는 압박과 제재 쪽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셈이다. 백악관 고위관계자 역시 이날 “(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그러한 관여가 ‘(대북) 압박작전’을 약화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도 이날 강 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북한의 고삐를 죄는 것에 대해 (한미가)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물론”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여부에 대한 양국의 합의가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문 대통령은 기내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를 만족시킬 사드 해법이 있는지에 대해 “이번 정상회담부터 그 모색이 시작돼야 하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백악관 측에서도 이번 회담에서 사드 문제가 반드시 주요 논점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DC=민병권기자·박형윤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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