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 대한민국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꼬집는 말이다. 서울 1,000만, 경기도 1,200만, 인천 300만, 도합 2,500만 명이 수도권에 산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서울을 중심으로 모여 산다는 소리니 대한민국은 곧 서울과도 같다는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씁쓸함에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곧 살기가 힘들다는 말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여름은 다른 곳보다 한층 더 덥다. 차에서 나오는 열기를 아스팔트는 흡수하지 않고 튕겨낸다. 에어컨은 건물 밖으로 열기를 빼내는 원리라 길바닥은 지글지글 끓는다. 여름이 되면 ‘도심 속의 휴양지’가 간절해지는 이유다.
내 회사 바로 앞에 공원 같은 휴식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업무와 더위에 모두 지쳐 있을 때 퇴근 후 휘적휘적 걸어가 한숨 돌릴 수 있는 공원 같은 곳이 있다면. 당신의 휴식을 위해, 이름부터 공원인 음식점이 있다. 역삼 ‘르파크’다.
One go! 일단 씹고!
당신에게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이란 어떤 동네인가. 반듯하게 닦인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들어선 고층 빌딩 숲이 떠오른다면 강남을 반만 알고 계신다고 감히 말하겠다. 고층빌딩 뒤로 들어가면 직장인들이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는 주점들이 빽빽이 들어 차있다. 낮에 빌딩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밤에는 빌딩 뒤로 옮겨가는 셈이다.
‘르파크’는 이 테헤란로 뒤쪽, 주점들 사이에 있다. 묘한 위치다. 위치를 검색해서 들어가다 보면 ‘어, 이런데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단 말야?’ 하는 생각이 들고, ‘혹시 길을 잃었나’ 싶기도 하다. 주변 풍경과 퍽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말로는 도심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장소를 가게의 컨셉으로 잡았기 때문에 오피스 지구에 가게를 냈다고 한다. ‘르파크’는 프랑스어로 공원이라는 뜻인데, 가게 상호에도 사장님의 바람을 담은 셈이다. 실제로 공원 느낌이 나도록 가게를 디자인해 놓으셨다고 한다. 은은한 주황 빛 조명과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나무를 보니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숨은그림 찾기에서 꼭꼭 숨어있었던 정답을 찾듯 좋은 음식점을 찾는다고 생각해보자.
Two go! 화끈하게 빨고!
숨은 음식점 찾기를 마치고 가게 안에 들어가면 공원 느낌이 났던 바깥과는 달리 안은 완벽하게 모던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들어가자마자 매니저, 혹은 점원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 준다.
메뉴가 굉장히 다양하다. 크게 보면 식사류로는 수제 버거, 파스타, 피자 세 종류로 구성돼 있다. ‘휴식’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가벼운 이탈리안 음식을 준비했다고 한다.
메뉴를 풍부하게 만드는 이 집만의 특징은 다양한 음료다. 맥주나 와인 같은 기본 주류 외에도 전문점 느낌이 날 정도로 칵테일 종류가 많다. 칵테일 맛이 굉장히 풍부하니 꼭 주문하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Three go! ‘양식을’ 맛보고!
스파게티를 정석대로 먹는 방법은? 모 TV 프로그램에 나온 요리사가 ‘스파게티를 올바르게 먹는 방법’을 알려줬다. 스파게티를 포크로 들어 올려 스푼을 받침대 삼아 돌돌 돌린다. 스파게티가 한입 크기로 말리게 된다. 핵심은 절대로 말린 스파게티를 스푼에 옮겨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크만 사용해 입으로 가져가 먹는다. 다음 말이 재미있다. “스파게티를 스푼에 옮겨 먹는 건 파스타 먹을 줄 모르는 거예요.”
그 말에 졸지에 그 요리사의 아내가 파스타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됐다. 방송인이었던 아내가 음식 프로그램에 나와 스파게티를 스푼에 옮겨 먹는 모습이 누리꾼들에 의해 포착됐기 때문이다. 애처가로 소문났던 이 요리사는 다음 주 방송에서 서둘러 발언을 주워담았다. 스파게티를 스푼에 옮겨 먹어도 된다는 설명은 덤이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늘어나자 자연스레 ‘스파게티 먹는 법’에 대한 궁금증도 많아졌다. 포크에 말고, 너무 길면 나이프로 자르고…. 이렇게 먹는 게 맞다 하더라, 저렇게 먹는 게 맞다 하더라, 말만 무성하다. 그렇다고 파스타를 주식으로 먹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완벽하게 똑같은 방법으로 스파게티를 먹지도 않는다. 이탈리아 길거리 식당에서는 그냥 포크로 면을 들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스파게티 먹는 법’ 논쟁은 양식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1980~90년대 고급 먹거리였던 ‘경양식’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양식에 대한 어려움이 느껴진다.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가벼울 경(輕)’을 붙여 양식인 듯 양식 아닌 양식을 만들어놨다. 그렇다면 다른 양식은 ‘무거운’ 양식이란 얘긴가! 그렇다고 자장면을 ‘경중식’, 우동을 ‘경일식’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양식은 퍽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다.
양식을 어렵게 만든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식기는 밖에서 안의 순서로 사용하고, 냅킨은 옷깃에 끼우거나 무릎에 펴서 올려 놓으라’는 식사 예절부터 국가 간에 오래전부터 교류해 비교적 친숙할 수밖에 없는 중식이나 일식보다는 아무래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역사적 이유까지. 다만 아무리 어려워도 내 마음대로 먹으면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건 너무 단정적이지 않나 싶다. 오히려 그 말이 양식을 접할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음식이든 만든 사람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맛있게 먹고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은 요리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폐만 안 될 정도라면, 내 나름대로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을 수 있다. ‘스파게티를 정석대로 먹는 방법’은 없는 셈이다.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많겠지만 말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위치: 역삼역 3번출구에서 농협 건물 뒤쪽으로 들어가자.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 테헤란로에서 터키문화원쪽으로 들어가는 편이 빠르다.
**가격: 수제 버거 1만 원 내외. 파스타·피자 1만4,000원~2만원선. 칵테일 1만2,000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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