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가 첫 직장을 잡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는 재테크 필수 상품이 있었다. 파격 세제혜택으로 ‘직장인 1호 통장’으로 불린 재형저축이 첫 번째다. 더 여유가 있으면 드는 것이 주택청약통장이다. 청약통장의 등장은 서울 강남 개발과 맞물린다. 아파트 당첨권의 전매 차익을 노린 주택 투기가 기승을 부리자 건설부가 1977년 청약제를 골자로 한 주택공급규칙을 도입했다.
새 제도는 첫해부터 논란을 불렀다. 낙첨자의 원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당첨 조작설까지 불거졌다. 그래서 이듬해 도입한 것이 ‘0순위’ 통장. 6번 떨어지면 1순위보다 앞서 당첨 기회를 부여한 제도다. 당첨이 떼어놓은 당상이니 프리미엄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당연지사다. 3~4차례 떨어진 통장도 2배가량 프리미엄이 붙었다. 국세청이 1983년 0순위 통장 가입자를 전수 조사한 결과 3개 중 1개에서 한 차례 이상 손바뀜이 일어났다는 보도도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0순위 제도는 그해 가을 결국 폐지됐다. 불임 시술자에게 한때 0순위 자격을 부여한 적도 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청약제도는 경기에 따라 춤을 췄다. 경기가 고꾸라지면 청약 문턱을 낮추고 투기가 극성을 부리면 높이는 식이다. 외환위기 시절에는 정부가 아예 투기를 부채질했다. 무주택 우선공급 대상자는 투기 부추김의 첫 희생양이 됐다. 만 35세가 되도록 내 집 없는 세대주에게 우선권을 부여한 이 제도는 분양 흥행의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정부는 청약통장을 아예 없애는 극단적 방안까지 검토하기도 했다.
올해로 40년 된 청약제도가 여간 복잡하지 않다. 참여정부 시절 청약가점제 도입으로 더 꼬였다. 무주택 기간과 자녀 수, 가입 기간을 합산한 점수가 당락을 가르고 주택 크기에 따라 가점제 배정 물량이 제각각이다. 1순위 자격은 고무줄이요, 공고상의 깨알 글씨는 보험 약관이 명함을 못 내밀 정도다. 정부가 6·19대책의 약발이 떨어지자 청약제를 또 손질할 모양이다. 내 집 마련 계획은 최소 10년 앞을 내다보고 짜기 마련인데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잦은 변경으로 청약제도를 난수표로 만드는 것이 능사일까 싶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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