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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나의 힘”…그녀의 상상, 현실이 되다

불의의 사고로 데뷔 늦고

불안증세 시달렸지만 극복

US오픈 두 번째 출전 만에

막판 버디 몰아쳐 역전 우승

상금 10억에 신인왕 예약도

박성현이 17일 US 여자오픈 4라운드를 마친 뒤 갤러리의 환호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베드민스터=USA투데이연합뉴스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지 않나요? 그런 시간을 남보다 더 일찍 겪었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17일(한국시간) 여자골프 최대 상금(총상금 500만달러) 대회 US 여자오픈을 제패한 박성현(24·KEB하나은행)은 시련이 닥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를 월드스타에 올려놓은 것은 고난을 대하는 남다른 자세였다.

박성현이 프로 1부 무대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것은 2014년. 사실 2013년에 데뷔해야 했지만 뜻밖의 불운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12년 11월의 일이다. 1부 투어 진출권이 걸린 시드전을 보러 서울에서 전남 무안으로 가던 중 박성현이 탄 차는 뒤차에 들이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어머니가 운전 중이었고 박성현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지만 ‘수능’을 거를 수는 없는 일. 목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의 몸으로 시드전을 치른 박성현은 1타 차로 떨어졌다. 대회를 마치고 나서야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운 박성현은 합격한 또래 친구들이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열아홉 박성현은 그러나 길게 보기로 했다. 어차피 골프에 인생을 건 이상 빨리 찾아온 시련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며 스스로 토닥였다. 한두 번 겪는 불운도 아니었다. 고교 2학년 때부터 3년간 드라이버 입스(yips·불안 증세)에 시달려 한 라운드에 OB(아웃오브바운스)를 10개씩 냈고 스트레스성 복통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골프클럽을 한 달간 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성현은 가장 큰 무대에서 받을 갤러리들의 환호를 상상했다.

박성현의 상상은 마침내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파72·6,762야드)의 US 여자오픈 무대에서 감당 못 할 만큼 벅찬 현실이 됐다. 대회명에 국가명이 들어간 내셔널 타이틀 대회 US 여자오픈 역사상 두 번의 출전 만에 우승한 것은 2011년 유소연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우승상금은 90만달러(약 10억2,000만원). 지난해 시즌 전체상금(약 13억원)에 맞먹는 돈을 한 번에 거머쥔 것이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후 14번째 출전 대회에서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 제패로 장식한 박성현은 올해 신인왕을 예약했다. 13위였던 시즌 상금랭킹은 2위(145만달러)로 솟구쳐 유소연(170만2,000달러)과의 상금왕 경쟁이 흥미롭게 됐다. 또 평균타수 2위(69.120타)에 올해의 선수 포인트 3위(95점)다. 신인왕이 같은 해 올해의 선수까지 거머쥔 것은 1978년 낸시 로페즈(미국)가 마지막. 박성현은 39년 만의 대기록에 도전한다.

1라운드만 해도 박성현은 선두 펑산산(중국)에 7타나 뒤진 공동 58위였다. 2라운드(공동 21위)까지도 펑산산과의 격차는 그대로 7타. 그러나 3라운드 전반 1오버파 뒤 후반에 버디만 6개를 몰아치며 펑산산을 3타 차로 추격한 4위 박성현은 마지막 4라운드에도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언더파를 보탰다. 합계 11언더파 277타. 평균 260야드에 페어웨이를 딱 한 번 놓치는 정확한 장타로 평생 못 잊을 ‘인생 라운드’를 완성했다.

14번홀까지 뒤 조의 펑산산, 최혜진과 공동 선두였던 박성현은 15번홀(파5)에서 7m 버디로 앞서나갔다. 최혜진도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았지만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는 바람에 더블 보기를 적고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박성현은 어려운 17번홀(파4)에서 146야드 거리의 두 번째 샷을 8번 아이언으로 홀에 바짝 붙인 뒤 가볍게 버디를 잡아 펑산산과의 거리를 2타로 벌렸다. 18번홀(파5)에서는 세 번째 샷이 길어 그린을 넘어갔지만 박성현은 정확한 어프로치 샷으로 손쉽게 파를 지켰다. 이후 펑산산의 세 번째 샷이 홀을 외면하면서 박성현의 우승이 확정됐다. 박성현은 비회원 신분으로 출전한 지난해 이 대회에서 마지막 날 마지막 홀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던 아쉬움을 1년 만에 깨끗이 씻었다. 펑산산은 박성현과 비슷한 위치에서 시도한 네 번째 샷에 실수를 범해 트리플 보기를 적었고 6언더파 공동 5위까지 밀려났다.

한편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챙긴 18세 여고생 최혜진이 9언더파 단독 2위를 차지했다. 세계랭킹 1위 유소연과 허미정은 7언더파 공동 3위, KLPGA 투어 상위 랭커 자격으로 참가한 이정은이 6언더파 공동 5위에 오르는 등 공동 8위까지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선수들로 채워졌다. USA투데이는 “1998년 박세리부터 이어진 한국선수들의 지배체제가 올해 US 여자오픈에서도 계속됐다”며 “한국은 55명의 미국 다음으로 많은 29명이 출전했는데 이들은 상위권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반면 미국은 상위권에 한 명(마리나 알렉스·공동 11위)만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한국선수들은 1998년부터 20년간 아홉 차례나 US 여자오픈을 제패했다. 전문가들은 “어려운 코스에서 한국선수들의 기량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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