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 2위 인구대국으로 3,500㎞에 달하는 국경을 맞댄 중국과 인도가 최근 심상치 않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 군대가 한 달 이상 대치하는 분쟁이 이어지면서 다자 간 무역협정 교착은 물론 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양국 관계가 지난 1962년 국지전 이후 55년 만에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최근 뉴스위크는 “중국이 국경분쟁 상대방인 인도에 날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실탄을 사용한 훈련을 실시하는 등 중국이 인도와의 전쟁 준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미국 국무부도 양국의 대치상태를 우려하며 “중국과 인도는 직접 대화에 나서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촉구했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서부전구사령부는 티베트 북쪽의 쿤룬산맥 남부 지역으로 군수물자 수만톤을 옮겼다. 중국군은 도로와 철로를 이용해 전국에서 군사장비와 물자를 이송하는 등 ‘전시준비’를 연상케 했다. 중국 관영 CCTV도 중국 전투여단이 인도 시킴주-중국 티베트-부탄의 3개국 국경 인근에서 대규모 실탄사격 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이곳은 중국과 인도군이 한 달째 대치 중인 도카라(중국명 둥랑, 부탄명 도클람) 지역과 멀지 않아 중국이 인도에 군사력을 과시하며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왔다.
중국과 인도는 지난달 중순 이 지역에서 중국군이 도로연결 공사에 돌입한 후 한 달째 각각 3,000여명의 병력이 팽팽한 군사 대치를 벌이고 있다. 인도 입장에서는 이 지역까지 도로가 연결되면 중국군이 인도 북동부 7개주와 이어지는 길목의 요충지를 쉽게 점거할 수 있게 돼 자칫 인도 동북부가 본토와 ‘격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양국 군이 이처럼 오랜 기간 근접 대치한 것은 1962년 국지전 이후 55년 만이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어온 인도군대는 즉각 철수하라”고 경고했으며 중국 관영 영문매체 기관지 글로벌타임스도 최근 “중국은 분쟁지역에서 인도와 전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논평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 와중에 파키스탄 둔야뉴스는 중국군이 인도군을 향해 발포해 158명이 사망했다는 ‘가짜뉴스’를 게재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한치 양보도 없는 양국 간 영토분쟁은 아시아태평양 16개국 간 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에도 교착 신호를 내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한중일·호주 등 6개국이 오는 28일까지 인도에서 세부 협상에 들어간 가운데 중국과 인도가 인력이동 문제 등 주요 이슈에서 대립각을 세우며 협상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간간이 분쟁을 빚어온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것은 대국화에 속도를 내는 중국의 행보가 인도의 신경을 가장 먼저 자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인도는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으로 동남아 해양 진출을 가속화하자 중국의 인도양 패권 장악을 묵과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또 인도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군사기지화 작업을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베트남과의 석유 시추 협약을 연장하고 협력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등 ‘반중’ 결속에 나서며 중국 측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이밖에 미국과 일본, 인도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중국과 파키스탄이 우호 친선에 속도를 내는 등 주변국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양국 간 해묵은 감정은 다른 국경 분쟁지대로도 확산 중이다. 지난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 해결에 관한 질문에서 “중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 개선에 건설적 역할을 할 뜻이 있다”고 답하며 중국이 카슈미르 분쟁 개입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이 인도령 카슈미르와 국경을 맞댄 라다크 지역을 신장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편입을 계기로 확보하면서 이 지역은 양국 간 분쟁지구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인도는 또 다른 분쟁지역인 인도령 아루나찰프라데시 주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했고, 이후 중국이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인도 점유는 불법”이라며 6개 지역에 중국어 지명을 붙이겠다고 발표하는 등 영유권 분쟁이 빚어졌다.
이처럼 다자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각국 간 헤게모니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촉발되며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주요 외신들은 지적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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