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부터 이틀간의 일정으로 ‘기업인 간담회’ 행사를 연 것은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경청하기 위해서다. ‘친노동’에만 경도되지 않고 ‘친기업’ 정책도 활발히 균형감 있게 펴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긴 제스처다.
산업계는 기업인들과 적극 소통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높게 사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새 정부 출범 후 대기업에 대한 ‘때리기’나 ‘옥죄기’로 표현될 수 있는 내용들이 정책으로 공론화되거나 일부는 공개적으로 추진되면서 재계가 심리적으로 많이 움츠려 있었다”며 “이런 시기에 대통령이 직접 기업 총수나 경영인들과 허심탄회하게 만난다면 논의 내용을 떠나 회동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기진작 효과가 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기업 간부는 “(지난해 말에 세웠던) 올해의 투자계획이 국정농단 사태가 끝난 후 새 정부 들어서도 정책 불투명성 때문에 제때 실행이 안 돼 미뤄지거나 아예 수정되는 분위기였다”며 “대통령이 직접 경제인들과 만나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풀어주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면 정책 불투명성이 완화돼 기업들의 투자계획 이행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초점을 맞췄다. 일방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주입식으로 늘어놓기보다는 기업들이 경영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가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듣고 제도 개선이나 예산 지원 등을 통해 해소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모색하겠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노동 문제, 통상 문제, 4차 산업혁명 관련 규제 문제, 시장 공정화 이슈와 관련해 산업계에서 언론이나 국회 등을 통해 간접적인 우려를 나타내고는 했는데 그중 일부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적지 않더라”며 “이번 간담회는 재계의 걱정과 제언을 충분히 들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같은 오해가 풀리도록 충분히 소통하겠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고 소개했다.
이번 간담회에 가장 목마른 곳은 당장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관련한 경제보복으로 실적악화를 겪고 있는 현대차·기아차와 삼성SDI·LG화학 등이다. 이들 업체는 각각 자동차와 전기차용 배터리 중국 판매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이에 따라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은 이번 간담회에서 대중 수출 등의 애로 해소 도움을 호소하려고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재계 참석자들은 4차 산업혁명 등의 신성장 산업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들의 개선을 요청하는 내용의 제언을 마련해왔다고 대기업의 한 임원은 전했다.
이번 이틀간의 간담회 행사를 맞아 문 대통령의 대·중소기업 상생 정책에 호응하려는 기업인들도 움직임도 이어졌다. 둘째 날인 28일 간담회에 참석하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경우 부산 지역 협력사들과의 기술공유 정책 등의 사례를 소개하며 협력업체들과의 동반성장 의지를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기업인들의 호응이 경제성과로 결실을 거두려면 이날의 제언이 정책에 적극 반영되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과거에도 대통령들이 취임 후 재계와 만남을 갖고 애로사항을 듣곤 했지만 대체로 요식적인 행사에 그쳤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대통령 초청 재계 행사를 보면 이미 기업이 어떤 제언을 할지에 대해 청와대와 조율해 각본이 다 짜여 있는 쇼맨십 수준이었는데 그 제언에 대한 대통령의 해결 지시도 알고 보면 그 전에 이미 상당히 진행돼 비교적 쉬운 것들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행사가 효과를 보려면 일회성으로 만나는 데 그치지 말고 진짜 기업들이 애태우는 핵심 규제들에 대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행정적·정치적으로 풀어주려는 진심이 중요하다”며 “정책적 실행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기업들도 투자나 고용 목표수치를 요식적으로 제시하는 선에서만 끝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권 회장은 이날 간담회 직후 시내 모처에서 긴급 본부장 회의를 열고 일자리 창출, 상생 협력과 관련해 포스코가 추진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권 회장은 “일자리 나누기나 비정규직 전환 문제, 1차뿐 아니라 2·3차 협력사와의 상생 협력 활동을 눈앞의 비용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우리의 경쟁력 향상 방안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민병권·한재영기자 newsroo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