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노동 분야 전문가다. 참여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노사정위원회와 고용노동부 등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거나 연구용역 등을 수행함으로써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비정규직·근로시간·임금제도 등의 굵직한 현안도 다뤘다.
박 교수는 노사관계가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정권의 명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김영삼 정부 때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측면이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몰락에도 틀어진 노사관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의 문제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평가와 조언의 배경으로 작용한 역대 정권의 노동 정책에 대해 들어봤다. 박 교수는 참여정부의 공과(功過)를 시작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특수고용직 등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아울러 해법으로 기간제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내용의 기간제법을 내놓았다. 그는 “당시에는 고용안정성도 높아지고 동시에 비용(인건비)도 같아질 것이라고 봤지만 비용이 같아지면 굳이 기간제를 안 쓸 것이라는 약간은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정규직 직접고용을 꺼리는 데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해고가 어려운 이유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얘기다. 정부는 사실상 무제한으로 쓸 수 있었던 비정규직을 갑자기 2년만 쓸 수 있도록 제한해버렸고 기업은 2년 이상 안 쓰는 쪽으로 전략을 세우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결국 기업들은 돌려막기식으로 기간제근로자를 썼고 비정규직은 오히려 더 많이 양산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노동시장의 병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은 잘한 점이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미약한 치료법으로 병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이른바 떼법과 정서법이 통용됐던 노동시장의 풍토를 개선하고자 법과 원칙 준수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 원칙을 노동계에만 강요하는 우를 범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노동계에 법과 원칙을 중시하라고 강요했지만 사용자에게는 동일한 강도로 요구하지 않았다”며 “그렇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운동장이 사용자 쪽으로 기울게 됐고 결과적으로 노동계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낸 것은 업적으로 평가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노사관계의 다양한 주제를 노사정 대타협으로 풀어낸 것은 누가 뭐래도 업적”이라면서 “다만 큰 틀을 만들어냈던 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노사를 독려할 수도 있었는데 너무 성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양대지침, 성과연봉제 파동 등도 다 그 같은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라 볼 수 있다”면서 “결국 노정관계의 파탄을 불러왔고 노사관계의 건강성도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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