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대회 10승이요? 잘하기만 하면 한 시즌에 다 채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봐요.”
박인비(29·KB금융그룹)의 말투에서는 ‘골든 그랜드슬래머’의 위엄이 묻어났다. 10일 제주 오라CC에 마련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11~13일) 기자회견장. 메이저 통산 10승을 언제쯤 채울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인비는 시원스러운 대답을 내놓았다. “메이저가 한 시즌에 5개로 한 개 더 늘어났기 때문에 충분히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올해 하나 남은 메이저대회도 잘 해내야죠. 물론 10승을 못 채우고 은퇴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도 한 시즌에 여러 번 메이저 우승을 한 기억도 있으니까요.”
메이저 통산 7승의 박인비는 이 중 3승을 지난 2013년에, 2승을 2015년에 몰아쳤다. 메이저 최다승은 패티 버그(미국)의 15승. 박인비의 눈높이는 일단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10승에 맞춰져 있다.
오는 21일은 박인비가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날이다. 왼손 엄지 부상 탓에 출전권을 반납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박인비는 그러나 당당히 골든 그랜드슬램(메이저 4개 대회 제패+올림픽 금메달)을 달성했다. 그는 “지난해 부상 때문에 경기에 나가지 못하다가 굉장히 오랜만에 출전한 대회가 이 대회였다. 비록 컷 탈락하기는 했지만 이 대회에서 웜업을 잘하고 갔기 때문에 올림픽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올림픽 이후 재활에 전념한 박인비는 2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복귀 후 불과 두 번째 대회(HSBC 챔피언스)에서 우승했다. 그 뒤로는 우승 없이 톱10에 네 차례 들었고 현재 세계랭킹 8위, 상금랭킹 14위(75만5,000달러)다. 한 달 전 US 여자오픈 뒤부터 샷이 조금 흔들렸다는 그는 “잘 풀리는 시간보다 잘 안 풀리는 기간이 훨씬 긴 게 골프 아니겠느냐”며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게 골프인 것 같다. 다행히 지난 대회(브리티시 여자오픈 공동 11위)부터 샷 감이 올라와 스스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박인비는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하고 싶은 숙제가 두 가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이미 2012년에 우승했지만 이 대회는 2013년에 메이저로 승격됐다. LPGA 측에서는 에비앙을 포함한 5개 메이저 중 4개를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해외 일부 언론에서는 한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2013년 이후의 에비앙까지 제패해야 박인비의 그랜드슬램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인비는 “이미 그랜드슬램은 이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에비앙 우승이 숙제라는 생각도 든다”며 “그린 읽기가 워낙 까다로워 저랑 잘 맞는 대회는 아니다. 그렇지만 부족한 부분들을 계속 채워나가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다른 한 가지 숙제는 국내 대회 우승. 박인비는 한국 팬들을 만나기 위해 종종 KLPGA 투어 대회에 참가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열린 KLPGA 투어 대회에 16차례 출전했다. 그러나 5월 두산 매치플레이 준우승을 포함, 우승 없이 준우승 여섯 번에 만족해야 했다. 해외에 계속 머물다 갑자기 국내 대회 환경에 적응해야 해 불리한 게 사실이다. 박인비는 “‘외국에서 할 것 다 해봤으니 국내에서 우승 한 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지난해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국내 대회 우승을 위해 LPGA 투어 대회 일정도 조절하면서 좋은 컨디션으로 임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부담감을 ‘팍팍’ 주면서 한 번 밀어붙여보겠습니다.”
/제주=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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