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를 평정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국 대륙을 탐하며 대마도 도주를 통해 조선에 교섭을 청했다. 조선은 1590년(선조 23년)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의 저의를 살피기 위해 황윤길을 통신사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각각 임명해 일본에 보냈다. 돌아온 황윤길(서인)은 “반드시 유병화(類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김성일(동인)은 “그런 상황이 없는데 민심을 동요시킨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동인이 장악한 조선 조정과 선조는 백성의 동요와 향유하던 권력에 변화가 초래될 것을 우려해 김성일의 의견을 좇아 일본의 침략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의 답서에조차 ‘정명가도(征明假道·명을 정벌하려 하니 길을 빌려달라)’라는 말이 있어 침략 의도가 분명했는데도 외면했다.
조선은 전쟁에 대비하느냐 눈앞의 평화만을 고려하느냐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조선은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제독 덕분에 일본에 먹히는 절체절명의 위기는 모면했으나 이후에도 제대로 힘을 기르지 않아 3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전쟁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 한일 합방을 당했다.
우리가 다시 이 같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남의 나라는 아니라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붕괴한 사회주의 통일을 위해 수십 년간 물불을 가리지 않고 깡패 행위를 벌여온 북한이다. 핵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거대한 무력 앞에 우리는 풍전등화(風前燈火)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을 용인할 수 없는 만큼 평화적·외교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대화와 평화주의를 강조했다. 우리 안보를 위해서는 더 큰 폭발력을 가진 탄두를 실을 수 있도록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에 대한 지원을 당부하는 데 그쳤다. 과연 현 상황이 힘의 균형 없이 대화만으로 풀 수 있는 상황인가.
김정일은 “수령님(아버지)이 살아 있는 동안 조국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에 가는 미사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도적으로 통일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해왔다고 한다. 동맹 때문에 핵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미국이 희생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게 하겠다는 의도다. 최근의 ‘코리아 패싱’ ‘헨리 키신저의 주한미군 철수론’ ‘북핵·ICBM의 게임체인저론’은 이 같은 흐름을 우려하게 한다.
김정일은 또 생전에 남한 통일 과정에서 2,000만명을 숙청하고 1,000만명은 이민 가게 놓아두고 나머지 2,000만명과 북한의 2,000만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하면 된다고도 얘기했다고 한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은 이르면 올해 중, 늦어도 내년까지 미국 전역에 도달할 수 있는 ICBM을 완성하고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핵탄두의 소형화, 나아가 수소폭탄에 가까운 핵분열증폭탄까지 완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는 대세를 가르는 한 판이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절대 핵 포기란 있을 수 없다고 나오고 있고 북한 무역의 90%를 담당하며 북한 정권의 존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국은 자신들의 전략적 이해를 고려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중국과 러시아까지 포함해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안을 채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압박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원유 지원은 제재 대상에서 빠졌고 북한 노동자의 해외 송출도 전면 중단이 아닌 현 수준 동결로 결론 났다. 이 정도 제재로 북을 잠시 불편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핵과 미사일을 갖기로 작정한 김정은을 멈춰 세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핵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핵 문제 해소 때까지를 조건으로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식으로 전술핵을 들여오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핵탄두는 미국이 제공하되 한국 전투기에, 한국 미사일에 실어 나를 수 있도록 하자.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만만치 않겠지만 한미 동맹을 더욱 결속시킬 것이다. 이는 중국이 한국을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 하고 제대로 북한을 압박하게 만드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과도 충분한 협의를 거쳐 공조를 다지자.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전술핵 재반입이 최근의 난국을 돌파하는 종합 처방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약했던 신라가 동맹·외교를 잘 활용해 통일을 달성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격언이 있다. 온갖 야유와 멸시에도 전쟁 대비를 역설해 나라를 구한 윈스턴 처칠처럼 평화를 위해 전쟁에 대비해야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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