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뒤로 노무현 전 대통령, 그 옆으로 일본의 아베 총리부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란히 걸려있다. 웃고 있는 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욱일승천하는 듯하나 당황한 기색 역력한 아베 총리부터 찌푸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등 대체로 표정이 ‘좋지 않다’. 특히 전시장 맨 구석에 설치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은 풀 죽은 심통꾸러기처럼 묘사됐다. 신문지와 흙을 재료로 만든 작품이라 “내 매력 중 하나는 엄청난 부자라는 것”이나 ‘최고 존엄’ ‘유신’ 혹은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는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봐” 등 해당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최근 발언과 상징적인 문구 등 보도 내용이 선명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확산된 사회참여형 미술의 한 갈래인 ‘민중미술’의 1세대 대표 작가 임옥상(67)의 설치작품 ‘가면무도회’다. 22일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바람 일다’를 열고 7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 임 작가는 “2014년 물대포 진압 사건 이후 당국이 ‘시위 중 가면 착용자는 IS취급하겠다’고 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대형 가면을 만들어 쓰고 시위현장에 나간 적 있다”며 운을 떼 “그 계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독재자 시리즈’를 만들고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들기 시작한 것을 위정자와 권력자 연작으로 확대하니 보다 ‘즐거운’ 일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나 말로 해봤자 전달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그림이 되기에, 말의 침묵이 그림이고 그림은 곧 침묵의 말”이라며 “자신의 얼굴에 책임지라고 한 명구처럼 각각의 얼굴에 그들의 행적이 기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세계 각국의 권력자를 아우르는 총 100여점의 위정자 시리즈를 제작했고 “허름한 공장에 이들 전체를 걸어 전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회화과 출신인 그는 1970년대만 해도 당시 최첨단이던 ‘추상미술’에 심취했다. “분단국가에서, 독재시대를 살면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미술로 세계 최고가 되리라고 생각한 게 ‘헛꿈’임을 문득 깨닫고 구상미술로 돌아서게 됐죠.” 워낙 엄혹한 시대라 표현이 자유롭지는 못했고 작가는 ‘자연’과 ‘땅’을 그리며 상징과 은유로 시대를 드러냈다. 추상적 방식으로 구상화를 그린 셈이다.
지난해 광화문 촛불집회를 소재로 한 108개 캔버스 연작 ‘광장에, 서’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걸린 ‘여기, 흰꽃’과 ‘여기 무릉도원’이 딱 그렇다. 흙을 섞어 만든 바탕에 북한산의 산세를 선묘로 그린 다음 그 아래쪽을 눈송이 같은 흰 꽃, 철쭉색 만발한 꽃으로 가득 채웠다. 낭만적인 산수풍경화 같지만 산 아래 광장에서 피어올랐던 촛불의 물결을 은유한다.
2011년 용산 화재 참사, 2015년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을 그린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붉은 색조로 용산 사건을 그린 ‘삼계화택-불 2011’은 집이 타는 줄도 모르고 탐욕에 빠진 형국을 칭하는 불가(佛家)의 표현에서, 흑백으로 물대포를 그린 ‘상선약수-물 2015’는 물이 최고의 선이라고 한 노자 도덕경의 구절에서 제목을 따 왔다. 9월17일까지. 입장료 3,000원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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