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과 함께 180여개의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파업과 시위 규모는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취임 후 첫 대규모 시위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고삐를 늦추지 않고 개혁 드라이브에 속도를 올리는 가운데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번이말로 노동시장 경직화라는 프랑스의 ‘고질병’을 고칠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추투(秋鬪)가 예고된 와중에도 문재인 정부가 노동 유연성 제고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노동개혁 이후 복지 등 프랑스의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패키지 개혁’까지 추진하고 있어 현지 언론들은 개혁 지지 여론을 등에 업은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 추진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개혁에 성공한다면 과거 ‘영국병’과 ‘독일병’을 각각 치유한 지도자로 꼽히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의 고질병을 고친 지도자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 제2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이 추진한 노동개혁 반대 시위가 이날 파리·리옹 등 주요 도시에서 열렸지만 규모가 예상보다 작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파리에서 시위에 참석한 시민 수는 경찰 추산 2만4,000명, 주최 측 추산 6만명으로 지난해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35시간 근로 수정’ 반대 시위 때 10만명 이상이 장기간 모인 양상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적은 수치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퇴직금상한제 △근로자 소송 가능시간 단축 △노조 협상 시 산별노조 기준에서 개별 기업 단위로 변경 △기업 내 복수노조체계 단일화 등 사회당의 올랑드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노동개혁보다 전방위적이다. 사실상 노조의 힘을 대거 축소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전례 없는 노동개혁 강행에도 저항이 약한 것은 프랑스 국민들이 이번 개혁을 ‘프랑스병’을 고칠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르피가로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개혁이 프랑스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2%로 절반을 웃돌았다. 앞서 레제코도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와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다르다”며 “노동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속전속결 개혁을 추진하는 마크롱 정권의 추진력은 개혁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르피가로는 프랑스 역사가 장 세리오의 분석을 인용, 재앙적인 경제상황과 뛰어난 전략가, 경제를 뛰어넘는 어젠다 설정과 함께 타성을 깨는 지도자의 에너지, 빠른 개혁 속도를 노동개혁의 성공 요인을 들었다. 과거 유명한 ‘하르츠 개혁’을 성공시킨 슈뢰더 전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극심한 실업난에 처한 프랑스의 경제 현실과 마크롱의 ‘밀어붙이기식’ 리더십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FT는 1990년대부터 시행됐던 노동개혁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강한 노조가 탄생해 새로운 인력의 진입 자체를 막았다며 ‘노동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경제 성장도 없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에 시민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프랑스가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경제성장 도모, 실업률 낮추기 등을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에 속도를 내는 반면 한국 정부는 노동 유연성 제고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스위스 유니언뱅크(UBS)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는 전 세계 139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83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하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역시 2015년 기준 31.8달러로 미국(62.9달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의 눈치를 보느라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데만 총력을 쏟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 기조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저성장·고실업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는 먼저 고용 안정성을 높인 뒤 그다음 유연성을 추구하자는 투스텝 전략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인다”며 “하지만 일단 고용 안정성을 높여놓고 나면 그 이후는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변재현기자 세종=임지훈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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