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실은 아저씨)들은 토요일 오전 9시까지 고구마밭으로 모이세요”
단톡방에 올린 마을 대표님의 공지.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반상회가 열리는데, 이번엔 올해 심은 고구마 수확 미션이 떨어졌다.
동네 남정네들은 삽이랑 포대를 들고 모였다.
여름 뙤약볕에 바짝 말라버릴까 걱정돼 직접 물까지 줘가며 키웠던 농작물이다.
아이들도 고구마 뽑기 체험을 했다. 요 녀석들이 삶고 구운 것만 먹을 줄 만 알지, 언제 이런 걸 캐보기나 했을까. 하긴 요즘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시골체험을 많이 하다 보니 “에이 별거 아니네요”라고 할지 모를지도. 아무튼 우리 동네 첫 ‘공동작품’이니 모두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듯 열심히 땅을 팠다. 호미로 땅 밑을 구석구석 파보니 제법 고구마가 나왔다. 몇 이랑 안 되는 데도 삽질 호미질로 온몸이 뻐근했지만 모처럼 웃고 떠드느라 즐거웠다.
“오늘 마을 반상회 안건은 말이죠..”
처음 귀촌 후 최대 문제점은 쓰레기 처리였다. 아파트에선 분리시설이 편하게 돼 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면사무소에 음식물 수거통 하나 갖다 달라 해도 바로바로 안 된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시골로 와 산다 해서 지자체가 “아이구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할 줄 알았다면 오산. 면사무소에선 예산 부족까지 들먹인다. 하지만 될 때까지 얘기한다. 대한민국에선 큰 소리쳐야 해결된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여기서도 적용해야 한다니 참. 아무튼 지금은 음식물 수거통 하나를 얻어 요일마다 동네 입구쯤에 분리수거를 한다. 미관상 보기 안 좋아도 너그럽게 넘어가 주는 시원이 엄마, 채윤이 엄마, 그리고 형윤씨 부부 고마워^^
‘정화조’
그냥 보면 참 예쁜 이름 같다. 하지만 이건 이번 반상회의 또 다른 안건이다. 속된말로 ‘똥통’
대부분 집들이 1년이 지났으니 한두 집 푸기 시작했다. 옛날 시골집 푸세식 화장실에서 겨울이면 ‘산’처럼 쌓였던 것. 그래서 맨 위 머리만 싹둑 잘라내며 볼일 보던 기억이 난다.
집집마다 하나씩 갖고 있는 정화조는 냄새의 악이다. 그 안에서 온갖 화학작용을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문제는 오물수거비용이다. 단 가격은 ‘용량’에 따라 다르단다. ‘많이 먹은 자여, 그 비용을 치르리라’
하지만 여기에도 공동구매가 통하는 법. 협상의 달인인 마을 청년들이 아저씨와 담판을 벌여 용량에 상관없이 7만원에 협상을 이뤄냈다. 보통 10만원이 넘는다던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누군가의 노고로 우리는 편안하고 깨끗하게 살아간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역시 반상회는 다 같이 음식을 나눠먹는 재미가 제일이다. 이번 메뉴는 닭백숙이다. 일명 ‘폐닭’이라는 알 낳는 숙명을 다한 닭을 재진이 아빠가 직접 구해와 잡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압력솥에 몇 시간 동안 푹 고은 백숙이 먹음직스러웠다. 아이들도 잘 먹는걸 보니 만인의 요리인가 싶다. 막걸리가 빠지면 섭할까봐 누군가가 벌써 준비해온 센스까지 더해져 식탁이 더 풍성해졌다. 한잔 두잔 술잔이 돌아가며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얼굴이 붉어져 갔다. 모닥불 속에선 갓 수확한 고구마가 뜨겁게 구워지는 이 밤. /최남호기자 yotta7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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