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양국 정부가 31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관련한 갈등을 어정쩡하게 봉합한 채 모든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이에 우리 정부가 한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과의 협의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간 안보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대북 압박 강도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이번 한중 개선 방안에 담겨 있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한중 관계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에는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는 그 본래 배치 목적에 따라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 것으로서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 측의 우려를 우리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재발 방지 대책은커녕 ‘사드 보복’이라는 구체적 용어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제2, 제3의 사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안전장치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드와 관련한 양국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입장은 입장대로 존중하면서 새로운 길로 가겠다는 것”이라면서도 “사드 보복에 대해 중국에서 취하는 일련의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중 간 협의 결과 가운데 “중국 측은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 등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천명했다”는 내용에 대해 ‘한미일 안보협력에 배치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이는 중국 정부의 한미일 삼각 안보 공조에 대한 견제를 반영한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또한 지난 30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같은 내용을 구두로 확인한 바 있다.
강 장관은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중이 발표한 관계개선 방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때문에 이번 협의가 11월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요구할 경우 대응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정부에 전략자산 재배치 또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된 입장 등 사드 추가 배치보다 더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 주도의 MD에 편입되지 않고 한미일 안보협력체에도 가입하지 않겠다는 뜻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20년 넘게 지켜온 공식적 입장”이라며 “미국 측과도 면밀히 협의했다. 대외적으로 한미동맹이라는 굳건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도출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협의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과의 공조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심이다. 북한은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해왔지만 최근 중국 당대회를 맞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명의로 축전을 보내는 등 북한·중국 관계회복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가까워진 한중관계에 위기감을 느낄 경우 빠르게 대화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한편 한중은 이날 베이징에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를 했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오후 베이징에서 중국 측 수석대표인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장조리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를 개최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이 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 특히 한중관계 개선에 대한 결과 발표가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점에 (한중 수석대표 협의가) 이뤄져 아주 기대가 크다”며 “특히 오늘 회담을 계기로 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상황의 안정적 관리 측면에서 폭넓은 대화와 공감대 형성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냐’는 질문에 “앞으로 오는 기간 중에 무엇보다 도발을 중단하고 그다음에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접근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아주 조속한 시일 내에 또 미국을 갈 예정”이라며 “미국과 중국 순서에 상관없이 빈번하게 접촉을 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이번 한중 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는 양국의 신임 수석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지난달, 쿵쉬안유 부장조리는 8월 초를 전후해 각각 수석대표로 임명됐다./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