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눕지 않고 앉아 하는 수행(장좌불와·長坐不臥) 8년으로 유명한 선승 성철스님이 불교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으나 조계사 취임식에 나가지는 않고 수행 중인 가야산 백련사에서 전하기만 했던 법어다. 그는 24세에 출가한 후 30대 중반 대구 파계사에서 8년간 장좌불와 참선으로 맹렬정진 한 끝에 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종정에 추대되자 대중매체들이 신비롭기까지 한 그의 수도생활을 다퉈 소개해 관심이 집중됐지만 취임식 날 이렇게 쪽지만 넘겼고 이 말은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성철스님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이 문구를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제대로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법문 해석을 위해 다양한 철학적 지식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필자는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진실과 진리가 도처에 있지만 편견이나 진영에 갇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범 직후부터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임기 중 공공 부문 비정규직 31만명 가운데 65%에 달하는 2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공무원 17만명을 포함해 공공 부문에 총 8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올해보다 16.4%나 올렸고 연평균 15.7%씩 3년 내 1만원까지 올리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공무원 17만명을 추가 고용하면 30년간 327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85%가 중소·영세기업에서 일하는데 감원이 불가피하고 해외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하는 등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은 설상가상이다. 30년 이상 된 석탄화력발전소 8곳을 한 달간 일시 가동 중단하고 노후 석탄발전소 10기는 임기 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명 연장한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하며 원전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대체에너지로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하겠다지만 산이 많은 우리 자연환경의 현실을 무시한 방향이라는 게 대다수 에너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쯤 하면 문재인 정부의 드라이브가 ‘운하’ 건설 공약을 ‘4대강’으로 밀고 나갔던 이명박(MB) 정부의 공포를 초월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IMF 이후 가속화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관련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한다. 양극화 해소에 일면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 방향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 비용은 궁극적으로 국민·후손들의 부담으로 전가가 불가피하다.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면서 투자의욕이 떨어지고 해외 공장이전 등으로 결국 일자리도 위축될 것이다.
세계는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전체 파이를 키우도록 기업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35%인 법인세율을 15%로 낮추려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도 법인세율을 20%에서 오는 2020년까지 17%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은 노동권을 억제하고 기업 활성화를 지원하는 하르츠개혁의 결실을 보고 있고 프랑스는 친기업·친시장을 위해 노동시장 개혁에 올인하고 있다. 한국만 복고풍의 포퓰리즘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직접적인 원인은 권한남용이고 국민적인 저항의 배경은 사이비종교에 놀아났고 공동모의했다는 의혹이다. 촛불시위에서 터져 나온 적폐 척결 주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정책들을 단순히 적폐청산이라는 선동구호 아래 도매금으로 넘겨야 할까.
부패청산은 부패청산이고 정책은 정책이다. 진영논리 아래 모든 정책을 적폐청산 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오픈 마인드로 문을 열고 야당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도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제대로 보도록 노력하고 다가올 선거에서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힘이 약하면 언제든지 두들겨 맞았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확인시켜줬다.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자면 영리한 돌고래가 돼야 한다고 한다. 그러려면 국민들이 똑똑해야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이라는 성철 스님의 법어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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