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전시 초입부터 주목을 끈다. 한국 및 중국 역대 명필가들의 개성적인 조형성과 각기 다른 서체의 특징을 종합한 ‘추사체’는 한국 서예사의 대미다. “추사를 아는 자도 없고 모르는 자도 없다”는 말처럼 추앙받던 그에게 흥선대원군 이하응, 허련 등 당대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배움을 청했고 훗날 ‘추사일파’로 불리는 거대 흐름을 만들었다. 1부에서는 김정희의 작품을 중심으로 19세기에 활동했던 ‘추사일파’의 서예, 사군자를 관람할 수 있다.
전시실 중앙을 장식하는 추사의 ‘소원학공자(所願學孔子)’ 현판은 그의 개성을 잘 드러낸다.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한 필획과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하면서도 파격적인 조형미는 그의 전유물이다. 추사는 ‘모나고 굳세며 예스럽고 졸박함’을 예서의 최고 미덕으로 여겼다. 한편 당대에는 손가락에 먹을 묻혀 글을 쓰는 양식이 유행했다. ‘심수상응(心手相應, 마음과 손이 하나돼 자유자재로 표현하다)’의 경지를 추구하던 사대부들이 18세기 후반부터 자주 사용했다. 추사의 제자 김석준(1831~1915)의 ‘송운’은 손가락의 첫번째 마디 바깥쪽에 먹을 묻혀 쓴 것이라 한다. 강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획의 흐름이 인상적이다.
2부 ‘화려함에 물들다’에서는 어지러운 정치상황과 다르게 활기 넘치고 화려했던 생활상을 관찰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백자 청채 동채 양각 장생문 병’은 ‘고려 청자는 화려하고 조선의 백자는 소박하다’는 편견을 한번에 뒤집는다. 몸통 전체를 양각(문양이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는 것)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채색을 한 병이다.
3부에서는 문방사우와 관련된 물건들을 전시했다. 붓을 꽂아두는 필통, 종이를 꽂아두는 지통 등이 전시됐다. 분질서의 동요로 부유층이 증가하자 문방구 수요가 급증해 장식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백자 위주이던 연적과 필통에 복숭아, 개구리 모양 등의 장식이 더해져 볼거리가 많아졌다. 전시는 내년 3월31일까지.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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