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주일 예배를 보던 신도들을 향한 총기난사 참극이 벌어졌다. 조용한 교회당을 15초 동안 가득 채운 20발의 총성은 그 자리에서 2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발생한 참혹한 사건으로 미국 사회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불과 한달여 사이에 벌어진 두 건의 총기난사로 8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미국 내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게 일고 있지만 실효성을 담보할지는 의문이다.
CNN과 AP통신 등은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시 인근 타운인 서덜랜드스프링스의 한 침례교회에서 일요일인 5일(현지시간) 오전11시30분께 전투복 차림의 무장괴한이 반자동소총을 난사해 5세 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모두 2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했다고 텍사스 경찰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총격범은 루거 AR로 추정되는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 수차례 총탄을 재장전하며 교회 안의 사람들을 겨냥해 무차별로 총탄을 난사했다. 교회 건너편 주유소 직원은 “총성이 20발 넘게 들렸다”고 전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지사는 사상자 수를 확인한 뒤 “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참사”라고 말했다.
범행 후 타고 온 차로 달아나던 총격범은 한 이웃 주민이 총을 들고 추격에 나선 지 얼마 후 숨진 채 차 안에서 발견됐다. 그가 자살했는지, 이 주민에게 사살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총격범의 신원이 인근 지역에 거주하던 26세의 백인 남성 데빈 켈리라고 확인했으며 “테러조직과의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CBS방송에 따르면 켈리는 고교 졸업 후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미 공군에서 복무하다 2014년 5월 공개되지 않은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 돼 불명예 제대했다. 결혼 후 장모가 범행지역인 서덜랜드스프링스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900여명 정도가 사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은 상상도 못한 총기참사로 비통에 잠겼다. 총격이 일어난 침례교회의 프랭크 포머로이 목사는 이날 다른 지역으로 출타해 참사를 면했지만 그의 14세 딸 애너벨이 참사의 희생양이 됐다. 텍사스 경찰당국은 사망자의 연령대가 5세에서 72세 사이이며 임신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체류 중 소식을 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사건 직후 트위터에 “일본에서 상황을 모니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 현지 강연에서도 “예배당에서 악마의 행동이 일어났다”고 비난한 뒤 “우리는 가슴이 찢어지지만 함께 뭉쳐 눈물과 슬픔을 통해 강하게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한달여 만에 또다시 발생한 대규모 총기참사로 미국 사회에서는 허술한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들로 들끓고 있다. 보스턴글로브는 올해 총기사건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한번에 4명 이상 숨진 총기난사가 307건으로 하루 한 번꼴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리처드 블루먼솔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금이 상식적인 총기폭력 방지를 위한 걸음을 뗄 때”라며 “의회의 공모는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총기규제에 거리를 두고 있어 이번에도 규제강화는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로 49명이 사망하면서 총기구매자의 이력 확인을 강화하는 법안이 추진됐으나 상원에서 제동이 걸렸고 58명이 사망한 라스베이거스 참사 후에도 총기규제 강화를 위한 민주당 의원들의 입법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