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6일 돌연 사의를 공개 표명했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자금유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전 수석은 사의 표명 직전까지도 관련 의혹과 관련해 억울함을 호소했었다. 그러나 현직 청와대 수석이라는 직분을 유지하면서 수사에 응할 경우 검찰에 압력을 가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판단, 장고 끝에 거취를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진퇴 분위기 반전된 20시간=지난 15일 오후4시 무렵까지만 해도 전 수석의 진퇴를 예단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전 수석은 언론에 전한 입장문 발표를 통해 “(혐의 여부에 대한) 사실 규명도 없이 (수석직을) 사퇴부터 해야 하는 풍토가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고 밝혔다. 16일 오전11시45분 무렵 상황은 돌변했다. 전 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오늘 대통령님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취재진에 밝힌 것이다. 이어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정무수석으로서 대통령님을 보좌하는 데 최선을 다해왔고 다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누를 끼치게 돼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심경을 전했다. 전 수석은 한국e스포츠협회의 자금유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제 과거 비서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선을 그으며 본인은 자금유용 혐의가 없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언제든 진실규명에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약 20시간 만에 상황이 돌변한 데는 문 대통령의 의중 파악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전 수석은 15일 억울함을 호소하는 입장문을 내놓기 전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서 귀국하기 전에 진퇴를 결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는 문 대통령이 필리핀에서 출국해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향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전 수석 입장에서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기도 전에 비서실장의 요청만을 듣고 거취를 결정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임 실장과의 자리에서 결론을 내지 않고 당일 오후 억울함을 호소하는 입장문을 언론에 전달한 뒤 귀국한 문 대통령의 정확한 심중을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속뜻과 후임 인선은=15일 오후 전 수석이 문 대통령과 독대를 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15일 저녁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 수석에 대해 “경험이 많은 정치인인데 대통령의 의중이나 지시에 따라 (거취를) 결정할 리 없을 것으로 본다”고 메시지를 던졌다. 이로써 전 수석은 사실상 ‘결자해지’를 바라는 문 대통령의 고민을 이심전심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윽고 사의를 굳혔고 검찰의 소환이 임박하자 16일 오전 물러나겠다는 뜻을 언론을 통해 공개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그간 국회와의 가교 역할을 해온 정무사령탑의 공백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당장 연내에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고 경제 및 개혁과 관련한 시급한 현안 입법을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후임 인사를 마냥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이상 이달 안에 신임 정무수석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복수의 청와대 소식통은 전했다. 후임은 2~3선급 전직 의원 중 여야 모두로부터 신망이 있는 인물 중에서 낙점될 가능성이 있다. 전 수석과 호흡을 맞춰온 청와대의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도 훌륭한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사 향방은=전 수석의 용단으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로서도 살아 있는 권력의 심부에 칼을 들이댄 만큼 향후 결과에 따라서는 자신이 베일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을 쥐게 된 셈이다. 검찰의 소환은 다음주 초로 예상된다. 수사의 핵심은 전 수석이 회장 또는 명예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를 사유화해 각종 이권을 챙겼는지 여부다. 검찰은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 등 해당 업체 관계자를 조사하면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이었던 전 수석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윤모 전 비서관의 자금 제공 요구에 응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권·안현덕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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