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타주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달굴 금빛 희망이 펑펑 솟구쳤다.
‘스켈레톤 천재’ 윤성빈(23)은 19일(한국시간)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2017-2018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스켈레톤 2차 월드컵 남자부 경기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37초32를 기록, 31명 중 1위에 올랐다. 또 이날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끝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4차 월드컵에서는 여자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19·성남시청)이 대회 2관왕(1,500·1,000m)을 차지했다. 최민정은 올 시즌 마지막 월드컵인 이번 대회까지 개인 종목 12개의 금메달 가운데 5개를 휩쓸었다.
윤성빈의 금메달은 기록도 타이밍도 좋았다. 올림픽 시즌인 2017-2018시즌의 두 번째 대회에서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합계 0.63초 앞질렀다. 지난 11일 1차 월드컵에서 0.11초 차 2위로 황제를 압박하더니 1주일여 만에 완벽한 경기력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윤성빈은 1차 시기 48초82에 이어 2차 시기에는 더 빠른 48초50으로 트랙 신기록까지 작성했다. 1·2차 모두 1위에 오르는 동안 스타트 기록도 각각 4초51, 4초52로 두 번 다 가장 빨랐다. 윤성빈의 월드컵 금메달은 지난해 12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렸던 2016-2017시즌 1차 대회 이후 11개월 만에 처음. 개인 통산 세 번째 월드컵 금메달이다. 세 번 다 두쿠르스가 출전한 대회였다.
2015-2016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2위였던 윤성빈은 이제 세계랭킹 1위 타이틀을 달고 남은 ‘평창 리허설’에 나선다. 시즌 포인트 435점으로 두쿠르스와 동률이지만 가장 최근 대회에서 우승한 윤성빈을 IBSF 홈페이지는 1위에 올려놓았다. 오는 26일 휘슬러에서 열릴 3차 월드컵에서 윤성빈은 도전이 아닌 수성에 나선다.
이날 윤성빈이 누른 두쿠르스는 스켈레톤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선수다. 봅슬레이 선수 출신이자 스켈레톤 대표팀 코치를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17세 때부터 대표팀 생활을 했고, 친형인 토마스도 스켈레톤 대표다. 이미 2009-2010시즌에 세계 1위에 올라 8시즌 연속 왕좌를 지켜낸 두쿠르스는 월드컵 금메달을 48개나 쓸어담았다. 두쿠르스는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다. 기량이 만개하기 전인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7위를 했고, 전성기 때인 2010 밴쿠버·2014 소치 대회에서는 번번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두 번 다 홈팀 선수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두쿠르스가 윤성빈을 드러내놓고 경계하는 이유다. 썰매는 동계올림픽 종목 중 가장 홈 이점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장인 알펜시아슬라이딩센터는 지금부터 평창올림픽 개막까지 한국 선수만 이용할 수 있다.
서울 신림고 3학년이던 2012년 여름에야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썰매를 처음 탄 윤성빈은 소치올림픽 16위를 거쳐 강력한 올림픽 우승후보로 발돋움했다. 썰매 입문 전까지 스키장에도 가본 적 없던 그지만 아버지가 배구선수, 어머니가 탁구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시작하자마자 스펀지처럼 썰매 기술을 습득했다. 윤성빈은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둬 남은 시즌을 잘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트랙 레코드를 세운 게 굉장히 기쁘다”고 담담한 소감을 밝혔다.
한편 한국 쇼트트랙은 4차 월드컵에 걸린 8개의 금메달 중 3개의 금메달(최민정 2관왕+남자 5,000m 계주)을 가져갔다. 최종 성적은 금 3, 은 4, 동메달 1개. 최민정과 함께 여자 대표팀의 쌍두마차를 이루는 심석희는 지난 18일 1,500m 은메달을 따냈고, 19일에는 1,000m 결선에서 2위로 달리다 마지막 순간 영국 선수와 충돌해 넘어지면서 4위로 떨어졌다. 또 여자 3,000m 계주에서 한국은 김예진이 중국 선수와 부딪치는 바람에 최하위로 들어왔으나 이후 중국이 실격 처리되면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김도겸·임효준·곽윤기·서이라로 짜인 남자 계주 대표팀은 3년 만에 월드컵 첫 금메달을 합작해 홈구장을 가득 메운 5,000여 팬들을 흥분시켰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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