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것은 대북 압박을 최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합법적인 근거 부족으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대북 강경노선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명분까지 얻으면서 꾸준히 재지정을 예고해왔다. 북한이 지난 2개월 동안 추가 도발을 자제하면서 일각에서는 북미 대화 분위기에 무게를 두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정권을 “살인정권”으로 규정하며 ‘최대 압박’을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 순방 이후로 결정을 미뤄 온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재지정을 강행한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파견한 대북 특사가 빈손으로 귀국하면서 북한은 물론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보다 강화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국제사회의 고립과 제재 강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의 일환으로 21일 재무부가 발표할 추가 제재가 2주간에 걸쳐 이뤄질 것이며 2주 후에는 대북제재가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북한이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통해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의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북측에 대한 압박 효과를 높이고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는 큰 것으로 평가된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것은 대북 압박 작전과 외교·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데 중대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도 꾸준히 검토됐으나 그동안은 법적 근거를 찾지 못해 2008년 부시 행정부에서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된 상태가 유지돼왔다. 하지만 2월 김정남 암살 사건이 트럼프 정권이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여기에 6월 북한에 억류됐다 위독한 상태로 귀환한 뒤 숨진 오토 웜비어 사건도 의회 여론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언론에서는 미국 정부 내에서 최근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결정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했던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빈손으로 귀국하면서 북한이 중국의 설득에도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북한에 대한 포위망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북측에 내보이는 동시에 중국이 보다 강력하게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문제는 9월 중순 이후 핵·미사일 도발을 자제해온 북측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트럼프 정부와 대화의 문을 닫고 추가 도발이나 호전적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2008년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에 주춧돌을 놓은 로버트 갈루치 북핵 특사는 “이번 조치는 ‘중대한 오판’일지도 모른다”면서 “북미 대화의 돌파구를 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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