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시절 ‘소신판결’로 맞선 이일규(사진) 전 대법원장의 10주기를 맞아 12월1일 대법원에서 추념식이 열린다.
이 전 대법원장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이 지난 1975년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될 당시 대법원 판사였다. 당시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판사 12명 등 모두 13명의 법관으로 구성됐는데 이 중 이 대법원장만이 유일하게 ‘사형 반대’의 소수의견을 냈다.
당시 이 전 대법원장은 강직한 성격 때문에 별명이 ‘통영 대꼬챙이’였다. 이 전 대법원장의 서세(逝世) 10주기를 맞아 그의 37년 판사 시절 행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생전 인터뷰 등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2007년 1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도예종씨 등 8명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이 전 대법원장은 “당시 대법원의 잘못을 인정한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안기부를 통해 이 전 대법원장을 미행하고 도둑으로 위장해 집안을 뒤졌지만 아무런 흠을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법원장이 노태우 정권 시절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장에 임명된 일화도 종종 회자된다. 1988년 2차 사법파동으로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임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정기승 대법관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는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고 노태우 정권은 법조계 안팎에서 존경받던 이 전 대법원장을 새 대법원장으로 지명하게 된다.
이 전 대법원장은 임명 후 청와대에 사법부 독립 보장을 요구하며 대법관 임명 관행을 개선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 2명을 제청해 그중 한 명을 대통령이 낙점하던 관례를 깨고 1명만 제청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소신 있는 판결을 내렸다가 판사 재임용에 탈락한 이회창·김덕주 대법관을 대법원으로 다시 불러온 것도 이 전 대법원장의 업적으로 꼽힌다.
이 전 대법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 전 대법원장을 언급하면서 재조명됐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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