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의 감산연장과 글로벌 경기호조 속에 내년 국제유가 전망이 잇달아 상향 조정되고 있다.
유럽의 대형 투자은행인 ABN암로는 내년 유가가 이란·시리아 등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지난 2015년 이후 최초로 배럴당 7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특히 국제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안팎으로 묶었던 미국 셰일원유의 영향력이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지난 2년여 동안 약세를 보여온 국제유가가 거센 하방 압력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전문가들의 동의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가 2일(현지시간) 35개 글로벌 투자은행을 대상으로 집계한 내년도 브렌트유 선물가격 전망치는 배럴당 56.25달러(중간값 기준)로 나타났다. 이는 한 달 전 55.75달러에서 배럴당 0.5달러가량 오른 것으로 올해 국제유가 중간가격인 53.5달러보다 2.75달러 높다.
특히 네덜란드 ABN암로은행은 유가가 내년에 배럴당 7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으며 영국 HSBC와 로이즈은행은 65달러를 제시했다. 앞서 세계은행(WB)도 내년 원자재 가격 전망에서 국제유가 평균치가 내년에 배럴당 56달러로 올해(53달러)보다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새해를 한 달 앞두고 유가 전망이 들썩이는 것은 지난달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현행 일(日) 180만배럴 감산을 내년 12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하는 등 예상보다 큰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윌 헤어스 블룸버그 에너지 담당 애널리스트는 “감산 연장은 시장도 기대했지만 예외 적용을 받아온 리비아와 나이지리아가 생산량 상한선을 정하며 감산에 동참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OPEC의 감산 연장 합의 후 내년 2월물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1일 배럴당 64.3달러까지 치솟았다.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최근 잇따른 수정 전망 속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유가 강세에 힘을 보탰다. 경기회복이 본격화하면 원유 수요가 증가하며 가격도 오른다. 지난달 2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7%로 6월보다 0.1%포인트 올려 잡았고 앞서 국제통화기금(IMF)도 내년 세계 경제가 3.7% 성장할 것이라며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산유국을 둘러싼 정정불안 역시 유가를 흔들 변수 중 하나로 부상했다. 미국 등 서방의 금수조치 해제로 지난해 국제원유시장에 복귀한 이란에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제재 부과를 위협하고 중남미 최대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고조되는 것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할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고유가 시대를 끝내고 OPEC의 감산까지 몰고 온 미국의 셰일원유 및 가스 생산의 위력이 알려진 것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시장의 관심을 모은다. 블룸버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최근 연구 결과를 인용해 미국 내 신규 시추공에서 나오는 셰일원유와 가스 생산량이 미 에너지정보청(EIA) 전망치보다 10% 이상 적을 것으로 예측했다. 앞서 EIA는 이달 미국산 셰일원유 생산량이 한 달 전보다 하루 평균 8만배럴 증가한 617만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셰일 생산단가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개발 가능한 광구가 늘고 있어 미국산 원유 가격의 기준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유럽 원유의 기준인 브렌트유 간 가격 차이는 배럴당 5달러 이상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신용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28일 내년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당초보다 10% 오른 배럴당 55달러로 올리면서 내년 11월까지 배럴당 6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WTI는 50달러 선에 머물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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