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크리에이터가 생길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나영석 티비엔(tvN) 피디, 김태호 MBC 피디가 이전에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다면 이제는 그분들이 유튜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죠” (이필성 샌드박스 대표)
불과 3년 전 유튜브로 1인 미디어를 시작했던 유튜브 스타트업이 멀티채널네트워크(MCN)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채널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 플랫폼인 동시에 또 다른 크리에이터를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이제 유튜브 플랫폼을 방송의 전파와 같은 무기로 삼아 전통 미디어와의 구도를 바꾼다. 이들의 이야기를 6일 오전 유튜브 코리아 측에서 주최한 ‘크리에이터와의 대화’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박창신 캐리소프트 공동대표, 이필성 샌드박스네트워크 대표, 조윤하 비디오빌리지 대표다.
캐리소프트는 2014년 10월에 시작했다. 키즈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제작한다. 장난감을 소개하는 채널 ‘캐리와 장난감(Carrie&Toys)’로 구독자 150만명을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 사업을 비롯해 키즈 카페, 콘서트 등 오프라인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캐리와 친구들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7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캐릭터 대상을 타기도 했다.
샌드박스 네트워크는 195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도티TV’의 크리에이터인 나희선씨가 최고콘텐츠책임자(COO)로 있는 회사로 장삐쭈, 풍월량 등 120명 이상의 크리에이터가 소속돼 있다.
비디오빌리지는 CJ E&M에서 일하던 조윤하 대표가 창업한 MCN으로 조섭, 코리안브로스, 망가녀 등 크리에이터가 소속돼 있고 자체적으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보이즈빌리지’, ‘걸스빌리지’ 등을 확보하고 있다. 통합 구독자 수는 1,800만명이 넘는다.
- 나는 유튜브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일까.
△ 조윤하 대표(비디오 빌리지) : 유튜브는 전공이 있는 영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격증이 필요한 영역도 아니다. 기준을 두는 순간 경쟁력을 깎아먹는 일이라고 본다. ‘재밌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느냐’가 사람을 뽑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 이필성 대표(샌드박스네트워크) : 다른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좋아하고 비디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일상에서 깊이 자리 잡은 사람을 원한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건 유튜브라는 생태계를 좋아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들을 뽑고 있다.
△ 박창신 공동대표(캐리소프트) : 70명의 직원이 있는데 영상 분야에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별로 없는데 캐리소프트가 그런 일자리가 됐으면 하는 게 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친구들도 선호한다. 3년간 정규직으로 재직하면서 원할 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정규직을 모토로 해서 채용을 하고 있다.
- 어떤 사람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오래 살아남는가.
(월 이용자 수가 15억명을 넘으면서 유튜브는 국내에서도 독보적인 채널이 됐다. 유튜브도 ‘이미 늦었다’는 평이 많은 가운데 여전히 새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하면서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어떤 크리에이터를 중요하게 보는 지 솔직한 대답을 들어봤다.)
△이필성 대표(샌드박스네트워크) : 유튜브 크리에이터란 큰 키워드로 보면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이다. 첫째로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콘텐츠를 만들고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튜브 수익이 얼마나 나오고 인기를 얻고 잘 나가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연예인을 하는 게 더 맞다고 본다. 저희는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열망을 본다. 두 번째는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커뮤니티를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MCN 내에서 크리에이터끼리 교류를 하거나 콜라보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다른 크리에이터가 봤을 때도 인정할 있고 긍정적 기여를 하거나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윤하 대표(비디오 빌리지) :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뚜렷하게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관심받거나 유명해지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영감을 받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콘텐츠 철학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또 그 이야기를 지속가능하게 할 의지가 있는지, 여건이 되는지도 중요하다. 이전에는 오류에 빠져 인기있는 크리에이터를 섭외한 적이 있으나 길게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분들은 퇴출을 하는 등 성장통을 겪으면서 가이드라인을 잡아가고 있다.
- 조회수에 얽매이지 말 것
△ 박창신 공동대표(캐리소프트): 영상이 어느 궤도에 올라서 수익을 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3개월에 17만원 벌던 시절이 있었다. 이 과정을 버텨내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누적 100억 펀딩을 받았고 흑자도 내고 있지만, 어려운 과정에서는 의욕을 잃을 수 있는 직원에게 비전을 제기하고 함께 가자고 북돋우는 과정이 필요했다.
△ 이필성 대표(샌드박스네트워크) : 어렵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장 어려운 순간은 항상 오늘이라고 말한다. 처음이 덜 어려웠던 건 ‘크리에이터는 잠재력이 크고, 신뢰 관계를 맺으면 잘 될 거다’ 라는 우리의 초기 가설이 심플했기 때문이다. 그거만 열심히 하면 됐다. 오히려 지금 어려워진 것은 가설이 맞아떨어져서다. 도티가 콘텐츠 프랜차이즈가 됐고, 장삐쭈는 자체 제작도 할 수 있게 됐다. 안 해 본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 조윤하 대표(비디오 빌리지) : 조회수가 결국 만능은 아닌 것 같다. 많이 봤다고 해서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제 창업 초기 생각으로 돌아가면 내가 이 영상을 찍어서 그 사람이 무엇을 느꼈고 어떠 행동으로 연결됐고 그게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가설을 갖고 시작을 했다. 좋아하고 지속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콘텐츠를 하는 게 중요하다
- 형, 누나 하지 않는 분위기
(구성원 간에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호형호제’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게 공통적인 조직문화였다.)
△ 박창신 공동대표(캐리소프트) : 저희 회사 내에서는 연기자도 기획을 하고 기획도 촬영을 하며 피디도 보조출연을 해야 하는 등 협업하는 분위기가 돼 있다. 이런 분위기를 위해 모두가 정규직에, 서로를 피디라고 부른다. 이제 특성화고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열아홉부터 가장 연장자까지 서로 피디라고 부른다.
△ 조윤하 대표(비디오 빌리지) :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저는 ‘조(Joe)’로 불리고 ‘압둘’, ‘피니’ 등으로 다들 영어이름을 쓴다. 대부분 20대로 나이가 엇비슷하다 보니 형, 동생 하기가 쉬운데 그런 걸 방지하고 평등한 조직으로 운영하기 위해 호칭에 신경을 쓴다.
△ 이필성 대표(샌드박스네트워크) : 서로 이름에 님을 붙이는 분위기다. 다만 독특한 점은 콘텐츠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흥행을 기준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라 유튜브 생태계를 갖춰나가는 사업에 중점을 둔다. 잘 됐을 때는 잘 된 이유를 알고 아닐 때 역시 이유를 파악하려고 한다. 성과 중심, 실행 중심인 게 어떻게 보면 정보기술(IT)업계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 유튜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유튜브가 많은 이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바꿨다. 이들이 내다보는 미래는 앞으로는 유튜브와 그 외의 미디어를 구분짓거나 유튜브 내의 영역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 조윤하 대표(비디오 빌리지) :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만 콘텐츠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CJ E&M에서 근무할 때 방송국의 환경에서 무거운 제작 비용을 감당하면서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유튜브가 전통 미디어나 메이저 미디어로 불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체감하는 것은 그것과 다르다고 본다. 유튜브 내에서도 뷰티, 키즈, 게임 등 구분돼 있는 영역이 깨지면서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라이프형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등장할 것이다.
△ 이필성 대표(샌드박스네트워크) : 저희가 하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습관을 형성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보러 영화관에 가서도 너무 지루해서 유튜브로 ‘도티TV’를 본다고 하는 구독자가 있을 정도다. 전통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나누는 게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콘텐츠 산업이 얼마나 잘 커가고 있는 지 이 판 안에 있는 게 중요하다.
△ 박창신 공동대표(캐리소프트) : 기자로 오랫동안 근무를 했는데 지난 20년 간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다. 이 과정을 보니 미디어 간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고 본다. 저희 캐리소프트 역시 단순히 키즈 콘텐츠로 생각하기 쉽지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 콘텐츠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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