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같은 젊은이들이야 어떻게든 살 수 있지만 50세가 넘은 이들은 버티기 힘들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허드렛일도 찾기 힘듭니다. 언제 또 어떤 이유로 쫓겨날지 모두가 불안해할 뿐입니다.”
베이징 차오양구에 거주하는 후난성 출신의 30대 농민공(농촌 출신의 도시 저소득근로자) 류샤오펑씨의 얼굴에는 동료들이 하나둘 고향으로 내몰리는 척박한 현실 앞에 수심과 분노가 가득했다. 지난달 18일 베이징 남부에 있는 다싱구 신젠촌에서 발생한 한 임대아파트 화재 이후 베이징 시 당국이 벌이고 있는 농민공 강제퇴출 조치에 고향 동료 4분의1가량이 벌써 짐을 쌌다.
베이징시는 신젠촌 화재로 19명이 사망하자 화재 예방을 이유로 ‘디돤런커우(하층민) 정리작업’이라고 명명한 대규모 빈민촌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장비를 동원해 벌인 시내 135개 지역에 대한 막무가내식 철거작업이다.
신젠촌 화재 사건을 계기로 중국 농민공의 열악한 현실과 이들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 정책이 중국 사회에서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외신에서는 장기 집권을 노리는 시진핑 지도부가 집권 2기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의 고속성장 속에 가려졌던 농민공 등 저소득 계층의 불만이 커져서 빈부갈등이 사회·정치 문제로 비화할 경우 시진핑 국가주석이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야심 차게 발표한 오는 2020년 ‘샤오캉(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실현 목표는 물론 장기 집권의 꿈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당대회 개막 연설에서 공산당 창당 100년(2021년)에 샤오캉 사회를 이루겠다며 “중등 소득층의 비율을 높이고 도시·농촌 간은 물론 지역 간 발전 격차와 주민생활 수준의 격차를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신젠촌 화재 사건 이후 농민공의 열악한 현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시 주석이 당차게 내세운 샤오캉과 사회주의 현대 강국의 꿈은 기층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선전전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말 현재 농민공 수는 2억8,171만명으로 이 가운데 외지에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은 절반가량인 1억3,585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의 월평균 임금은 3,275위안으로 1만위안에 가까운 베이징 등 대도시 평균 임금과 큰 격차가 있다. 무역협회 상하이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베이징에서 평균 임금을 받는 직장인이 60㎡ 규모의 아파트를 사는 데 평균 37년이 걸리지만 농민공들은 사실상 평생 벌어도 대도시에서 아파트 한 채 구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농민공들이 고금리 대출회사에 기웃거리면서 부채 더미를 떠안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일 “농민공이나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 경력이 짧은 사무직 노동자, 도시 서민 등이 과다한 대출로 내몰리면서 빚을 못 갚는 대출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이번 화재 사건 이후 중국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정부 시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국 지도부의 위기감은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시 주석의 최측근인 차이치 베이징시 당서기가 겉으로는 민생 시찰 행보에 나서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간부회의에서 “기층 민중을 대하는 데는 총칼을 빼 들고 피를 보듯 강경하게 대응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고압적인 강경 대응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당 지도부에 대한 분노는 증폭되고 있다.
특히 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들 농민공이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커져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다. 베이징시 등 당국이 서둘러 농민공의 강제 퇴출과 언론 통제에 나서고 있는 것도 시위 발생과 갈등 확산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집권 2기에 돌입한 시 주석이 농민공 이슈와 같은 갈등 요인들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오히려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강력한 언론 통제와 강제 퇴출 같은 강압적 수단 외에는 뾰족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 시진핑 지도부가 처한 현실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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