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앞으로 10년간 1조5,000억달러의 감세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이 통과된 직후 “이번 법안 통과가 위대한 기업과 일자리를 재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자 미 재계가 최저임금 인상과 보너스 지급을 잇달아 발표하며 화답에 나섰다. 다만 감세안의 주요 골자인 법인세 인하가 일자리를 늘려 미국 경제에 강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일각에서는 재정악화를 심화시키는 등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컴캐스트와 2위 통신 업체인 AT&T는 세제개편안이 발효되면 직원들에게 각 1,000달러(약 108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기관 피프스서드뱅코프는 직원 1만3,500명에게 1,0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미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 수준이다. 웰스파고은행도 최저임금을 15달러로 높이고 4억달러를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기로 밝혔다.
추가 투자계획 발표도 잇따랐다. AT&T는 10억달러를, 컴캐스트는 앞으로 5년간 500억달러를 기반시설에 투자하기로 했다. 보잉은 시설개선과 실무교육 등에 추가로 3억달러를 쓸 것이라고 전했다.
세제개편안이 통과되자마자 기업들이 이 같은 화답에 나선 것은 법안의 핵심인 법인세 절감 때문이다. 세제개편안은 현행 최고 35%인 법인세율을 21%로 낮추고 기업들의 송환세율도 35%에서 12~14.5%로 인하하는 등 기업 세제 인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감세 규모 1조5,000억달러 중 1조달러가 법인세 인하에서 발생한다. JP모건은 이번 감세안이 내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들의 주당 순이익을 10달러씩 증가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마존·구글·페이스북도 내년에 45억달러 규모의 세금을 절약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여기에 애플·구글·엑손모빌 등 미국 대기업들은 법인세 인하에 기업최저한세(AMT)마저 폐지되며 법안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AMT는 각종 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최소 20%의 세율을 적용하는 일종의 최저한세제도여서 폐지 효과는 특히 대기업에 집중된다. 세금 인하로 미 기업 전반에 투자 여력이 증가할 경우 대규모 인수합병(M&A) 등이 가속화될 수 있고 해외 자금 환류 등이 더해지며 4차 산업혁명을 위한 투자 등에서도 해외 기업보다 앞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 인하 당근책이 기업의 설비투자를 활성화해 임금과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10년째 2%대에 머물러 있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도 이번 법안으로 2018~2019년 GDP 성장률이 0.3%포인트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세제개편안의 긍정적인 경제 부양 효과가 장기간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일고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펜 와튼 예산 모델(PWBM)’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세제개편안에 따라 2018~2027년 GDP 성장률은 연간 0.06~0.12%포인트 증가하지만 2028~2047년에는 부채 증가 효과로 GDP 상승 효과가 0.01~0.03%포인트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재정 적자가 심화될 우려가 높아지면서 20일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장중 한때 2.5%까지 뛰어오르는 등 4월17일 이후 최고치를 보이며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기도 했다.
국내를 포함해 미국 현지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편에 적잖은 영향이 불가피하다. 해외 기업들은 다국적기업에 대한 특별소비세 조항이 세제개편 최종안에 포함되지 않게 된 점에 우선 안도하는 분위기다. 해외 관계사로부터 자본재나 중간재를 구매하면 과세하는 내용이 담긴 특소세는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롭게 신설된 세원잠식방지세(BEAT·Base Erosion and Anti-abuse Tax)는 미국 진출 기업들의 세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한국 등 외국 기업이 미국에 설립한 자회사의 과세표준 문턱을 높인 것으로 BEAT의 세율은 매년 높아지도록 설계됐다. 미국의 법인세 징수 방식이 기존 우리나라와 같은 ‘속인주의’에서 ‘속지주의’로 바뀐 점도 주목된다. 과세표준이 달라진데다 미국의 법인세율이 대폭 인하되면서 해외 기업들이 절세를 위해 미국 현지 투자와 생산을 늘릴 가능성도 엿보인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과세원칙이 달라지는 만큼 미국 현지 법인을 둔 국내 기업들에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미 한국상공회의소(코참·KOCHAM)는 지적했다. /박민주기자 뉴욕=손철특파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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