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이 신입사원 연수 중인 여성직원들에게 100㎞ 행군을 위해 피임약을 사용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다. 국민은행 측은 신입사원들의 요청에 따라 피임약을 지급했다고 해명했지만 신입 행원이 행군을 빠지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8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충남 천안에서 진행된 신입사원 연수 때 은행이 신입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피임약을 지급했다. 국민은행이 신입 여직원들에게 피임약을 지급하게 된 배경은 신입사원 연수프로그램 중 하나인 100㎞ 행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매년 무박 2일 일정으로 신입 행원의 도전정신 함양을 위해 100㎞ 행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100㎞ 행군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정이지만 단합을 위해 여직원들도 참여한다. 은행 측은 이 행군이 생리주기에 있는 여직원에게 일반 남성직원보다 훨씬 더 힘든 일정이어서 건강을 위해 피임약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피임약 지급은 여성직원들만 별도로 모아 상황설명을 한 뒤 자의적 요청에 의해 준비한 것”이라며 “강제성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수에 참여한 한 신입사원은 “100㎞ 행군을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인사팀이 연수기간 내 생리주기를 조절하라고 피임약을 나눠줬다”며 “생리주기까지 회사에서 관리하는 것을 보고 지금이 2018년인지 헷갈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어렵게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신입사원들이 군대식 연수 문화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기업들은 도전정신과 조직문화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업무 능력과 무관한 행군과 극기훈련을 연수프로그램에 포함한다. 실제 지난 2014년에는 신한은행이 신입사원에게 ‘기마자세’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글을 암송하게 해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DGB대구은행 신입사원 64명도 100㎞ 행군을 다녀왔다. 이외에도 많은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연수 때 해병대 캠프, 등산, 행군 등 극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 대기업의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신입사원 이모(30)씨는 “연수원 생활을 하면서 계속 단체활동을 강조 받다 보니 내가 회사에 입사한 것인지, 군대에 입대한 것인지 구분이 안 됐다”며 “글로벌 기업이라는 회사의 말이 무색하게 조직문화는 아직도 수직적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수직적 조직문화는 정부에서 개입해 바꿀 여지가 있지만, 일반 사기업은 정부가 개입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바꾸기 위한 기업 경영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획일적인 군대식 연수프로그램은 성장만을 강조하던 시대에 맞는 옷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양성평등, 수평적 조직문화, 창의적 인재 육성 등 기업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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