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는 ‘태양의 후예’ ‘도깨비’ ‘구르미 그린 달빛’ 등 멜로·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신드롬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지만 지난해부터 방송계에서는 이렇다 할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태양의 후예’의 기적의 시청률인 38%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청률 20%를 넘는 드라마조차 찾기가 어려워졌다. 현재 방송 중인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은 3~10%대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외면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 중 하나로 남자 주인공(‘남주’)의 기근과 부재를 꼽는다. 과거에는 배우들이 스크린에 데뷔하기 위해 드라마를 떠났다면 현재는 군 입대로 배우들의 공백이 생겼다. 여기에 채널과 플랫폼의 증가로 인한 드라마 제작 편수의 급증도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수현, 이민호, 지창욱, 주원, 임시완, 옥택연 등 20대 후반~30대 초반 ‘남주’급 배우들이 대거 입대한데다, 이들을 대체할 비슷한 연령대의 지명도 있는 ‘남주’들이 마땅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비중있는 남자 조연(‘서브 남주’)급이던 윤현민(‘마녀의 법정’·‘터널’), 최다니엘(‘저글러스’), 양세종(‘사랑의 온도’ ‘듀얼’), 손호준(‘고백부부’), 윤균상(‘역적’ ‘의문의 일승’), 진구·김성균(‘언터처블’) 등이 주연에 발탁됐다. 20~30대 ‘남주’ 캐스팅에 난항을 겪자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으로까지 연령대가 높아져 김래원(‘흑기사’), 박병은(‘이번 생은 처음이라’), 차승원(‘화유기’), 이병헌(‘미스터 선샤인’), 장동건(‘슈츠’), 지진희(‘미스티’) 등이 캐스팅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대본이 좋아서 막상 제작하려고 하면 캐스팅할 남자 배우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다”며 “최근 그나마 인기를 끌고 있는 지상파의 한 드라마의 경우도 30대 후반의 지명도 있는 배우로 캐스팅하느라 애를 먹었다. 다행히 시청률 파워가 있는 배우라서 다른 드라마에 비해 시청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채널과 플랫폼의 증가로 인해 드라마 제작 편수는 급증하는데 주연급 배우는 한정되다 보니 억지 춘향 격으로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월화, 수목, 금토, 주말 등 고정 편성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배우 캐스팅이 썩 괜찮지 않더라도 드라마를 제작할 수밖에 없는 것. 드라마 편수는 늘었어도 몰입도가 떨어지는 배우들로 인해 시청자들 드라마에 대한 외면 속도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남자 주인공 ‘원톱’ 배우가 실제로 적은 데다, 현재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라고 전했다. 30대 한 여성 시청자는 “멜로 드라마는 여성들의 판타지가 시청률을 좌우한다”며 “그러나 최근 드라마에서는 현실을 잊게 해줄 만한 ‘남주’가 보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솔직히 ‘남주’들이 누구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남자 주연 배우들의 기근 속에 절호의 기회를 잡은 사례도 있다. 연기력과 대중의 호감도는 높지만 ‘서브 남주’에 머무르던 박서준은 ‘쌈 마이웨이’로 K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만년 조연’이던 남궁민 역시 상승세를 타다 KBS ‘김과장’으로 커다란 사랑을 받으며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했으며, K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쥐는 영예까지 안았다. 아이돌그룹 2PM 출신의 준호 역시 ‘기회의 주인공’이 됐다. ‘김과장’에서 물오른 연기력을 보여주더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원톱’ 남자 주인공으로 올라서며 한류를 이끌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남자 주연급 배우들의 부재로 인해 예상하지 못하게 컴백 일정이 당겨진 경우도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이민기와 ‘황금빛 내 인생’의 박시후는 컴백이 어렵거나 더 늦어질 수도 있었지만 남자 배우들의 공백으로 인해 캐스팅 기회가 생기면서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또 남자 주인공들이 부진하다 보니 여성 배우들이 활약하며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고백부부’의 장나라, ‘마녀의 법정’의 정려원 등이 단적인 예다.
히트작의 부재로 인해 한류 드라마 수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중국의 한한령으로 인해 지난해까지 중국 수출길이 막혔고, 현재도 한한령의 그림자가 여전하지만 수출할 드라마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 드라마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중국 등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류 스타들이 출연한 드라마 자체가 없다 보니 수출 문의 건수도 적은 데다 단가 역시 낮아졌다”고 말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