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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겨울에 떠난 경북 상주] '오렌지빛 세상' 곶감 덕장...은빛으로 수놓은 낙동강

'하늘이 빚은 절경' 경천대 들러

詩 읊던 선비들 풍류 느껴보고

감칠맛 나는 상주 뽕잎밥도 별미

상주시의 곶감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66%. 상주는 10월20~11월10일 사이에 감을 따고, 깎아 덕장에 매다는 일로 정신이 없다.




상주를 가보고 싶었던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가로수마저 감나무인 상주는 주황색 감들이 과수원과 곶감 덕장을 뒤덮는 것도 모자라 포도(鋪道)까지 붉게 장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악산·덕풍계곡의 가을 단풍에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상주를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조금 늦긴 했지만 겨울을 맞은 상주를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하늘도 여행취재를 도와주고 싶었는지 상주로 가는 도중에 어두워진 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상도라는 행정구역 이름이 경주와 상주가 합쳐져서 될 정도로 큰 고을이었던 상주는 그렇게 함박눈을 하늘 가득 뿌리며 기자를 맞아줬다.

상주는 ‘4백(白)’의 도시다. 원래는 쌀·누에고치·목화의 산지인 까닭에 3백의 고장으로 불렸지만 목화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곶감이 대신했다. 여기에다 근현대에 들어 자전거의 은빛 바퀴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4백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상주시의 자전거가 유명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그 시원(始原)은 지난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에 경북선 열차의 개통 기념으로 ‘조선 8도 자전거대회’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그깟 자전거대회가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자

경천섬 맞은편 언덕위의 전망대에서 바라 본 전경. 낙동강이 완전히 결빙됐다.


전거는 보기 힘든 신문물이었다. 그런 자전거가 경상북도 하고도 상주에 본격 보급된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주에는 자전거박물관과 자전거도로 등 관련 인프라가 잘 정비돼 있다.

쌀은 상주의 드넓은 평야를 대변한다. 상주시의 면적은 1,254.8㎢로 서울의 두 배. 일개 시에 불과하지만 농토의 면적이 넓은데다 대부분이 평야인 까닭에 한때는 쌀 생산량이 강원도 전체의 생산량보다 많았던 적도 있었다. 토지 대부분이 산지인 경북의 다른 지자체와 달리 먹을 걱정이 덜하고 부유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또 다른 흰색 산물은 누에고치다. 1974년에는 누에고치 생산량 100만㎏이나 될 정도로 양잠은 상주의 주력산업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말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면서 무역이 시작됐고 중국산 명주가 수입되면서 상주의 양잠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일부 지역에서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잠사곤충박물관이 남아 옛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적지 않은 뽕나무밭은 논으로 변했고 시간이 흐르자 그 논은 다시 감나무를 재배하는 과수원으로 바뀌어 갔다. 이렇게 생산된 감은 다시 흰색 분이 덮인 곶감으로 가공되면서 쌀·곶감·은륜·누에고치는 ‘4백의 도시 상주’라는 명성을 굳건히 하고 있다. 김광희 해설사는 “한때 상주IC 근처는 모두 뽕나무밭이었다”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처럼 뽕나무밭이 줄어드는 만큼 사과·배밭이 감밭으로 바뀌었고 요즘에는 포도 과수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음식, 뽕잎밥이다.


곶감을 말리는 덕장을 보고 싶어서 들른 ‘새누리 곶감’은 직접 농사를 지은 과수원에서 수확한 감으로 곶감을 만드는 곳이다. 권오필 대표는 “800그루에서 감 30만개를 수확하는데 생과로는 팔지 않고 모두 곶감으로 만드는 데 사용한다”며 “물량이 모자라 인근의 감을 더 구입해 곶감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시의 곶감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66%. 곶감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2,648억원에 달한다. 재배면적은 2016년 현재 1,475㏊에 생산량은 9,980톤으로 10월20일~11월10일 사이에 상주는 감을 따고 깎아 덕장에 매다는 일로 정신이 없다.

따뜻한 덕장 안에서 곶감의 단맛을 보고 몸을 녹인 기자의 발걸음은 도남서원으로 향했다. 1606년 창건된 도남서원은 영남의 가장 큰 서원 중 하나다. 정몽주·김굉필·유성룡 등 9명의 거유를 배향하고 있는데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가을이면 백일장이 펼쳐진다. 백운 이규보 선생이 1196년부터 낙동강에 배를 띄워 낙강범주시회(洛江泛舟詩會)를 열어 풍류를 즐기기도 했는데 일제강점기 들어서면서 맥이 끊겼다가 최근 들어 다시 부활했다. 도남서원에 왔으면 낙동강의 제1경으로 꼽히는 경천대도 들러볼 만하다. 경천대는 옥주봉과 낙동강이 만나는 강변에 솟아 있는 무우정 옆의 바위다. 경천대는 인근의 선비들이 낙강범주시회를 열던 곳으로 가뭄이 길어지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하늘이 빚어낸 절경이라는 의미로 자천대(自天臺)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글·사진(상주)=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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