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은 무대를 만나 살아 숨 쉬게 된다. 희곡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연출의 독해, 그리고 배우의 체화다. 이 지점에서 원작자인 희곡 작가와 해석자인 연출자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필연적이다. 팽팽할수록 작품의 생명력은 강해지고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또 다른 작품으로 파생되기도 한다.
제작극장을 표방하는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는 이 과정을 무대 위에 드러내기로 했다. 올해 시즌 개막작인 고연옥 작가와 김정 연출의 ‘처의 감각’(4월5~15일) 얘기다. 2016년 이 작품은 초연되기도 전에 고선웅 연출의 각색본 ‘곰의 아내’가 먼저 무대화되면서 고 작가와 고선웅 연출의 불화설을 낳기도 했다. 이후 남산예술센터는 극작가와 작품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지난해 ‘서치라이트’에서 낭독공연으로 ‘처의 감각’을 선보였고 올해는 정식 공연을 올리기로 했다. 지난 17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 작가는 “극작이 한국 연극에서 가장 연약하다고 생각한다”며 “연출가 중심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환경에서 공연을 위한 도구가 되고, 수정되는 것이 당연시되지는 않았나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 재능 있는 작가들이 10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남산예술센터는 ‘처의 감각’을 포함, 한국사회의 근원적 문제에 집중하는 작품 8편을 선보이기로 했다. 1970~80년대 의문사를 다루는 ‘두 번째 시간(작 이보람·연출 김수희, 11월15~25일)’, 이념적 갈등에 내던져진 평범한 개인의 공포를 다룬 ‘에어콘 없는 방(작 고영범·연출 이성열, 5월17~6월 3일)’ 1980년대의 폭력과 용기를 블랙코메디로 풀어내는 2018년 시즌 정기공모 선정작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작· 연출 최치언, 10월 25일~11월 4일)’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역시 낯선 형식의 연극을 소개하는데 주력한다. 경민선 작가의 희곡을 인형극으로 연출한 ‘손 없는 색시(작 경민선·연출 조현산, 4월26일-5월7일)’를 어린이날에 맞춰 선보이고 키네틱 센서로 공옥진의 병신춤을 복제해 게임 프로그램화하는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공동창작·연출 윤한솔, 10월 4-14일)’으로 색다른 시도를 이어간다.
지난해 권여선 작가의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에 이어 올해도 한국 소설의 무대화 작업이 이어진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9월 4일~14일)으로 정진세 작가가 각색하고 강량원 감독이 연출한다.
남산예술센터는 다음 달 1일 오후 2시 상반기 공연 패키지 티켓을 오픈한다. 대상 공연은 ‘처의 감각’, ‘손 없는 색시’, ‘에어콘 없는 방’ 등 3편이며,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예매할 수 있다. 전석 1만5,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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