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스타와 황제간의 ‘꿈의 대결’이 펼쳐진다.
정현(22·삼성증권)과 로저 페더러(37·스위스)가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 길목에서 맞닥뜨린다. 페더러는 24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8강에서 세계랭킹 20위 토마시 베르디흐(체코)를 3대0(7대6, 6대3, 6대4)으로 눌렀다. 앞서 테니스 샌드그렌(97위·미국)을 꺾은 정현은 페더러와 오는 26일 오후5시30분 준결승전을 벌인다.
페더러와 정현의 대결은 사상 처음이다. 페더러는 지난해 이 대회 챔피언. 호주오픈 5회를 포함, 메이저대회 통산 19회 우승을 자랑하는 테니스 황제다. 현재 세계랭킹은 2위. 랭킹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은 8강에서 탈락했다. 정현이 페더러마저 넘는다면 마린 칠리치(6위·크로아티아)-카일 에드먼드(49위·영국)전 승자와 대망의 우승을 다툰다.
페더러는 30대 후반의 노장임에도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때 한물갔다는 평가도 들었지만 지난해 이 대회에서 나달을 꺾고 우승하며 건재를 과시했고 또 다른 메이저인 윔블던도 제패했다. 페더러의 강점은 단연 노련미다. 이날도 초반 밀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특유의 우아한 백핸드가 살아났고 결국 완승으로 마무리했다.
정현은 타이 브레이크 상황에서의 대담한 플레이가 돋보인다. 타이 브레이크는 게임 스코어 6대6일 때 적용된다. 12포인트 중 7포인트를 먼저 얻은 선수가 그 세트를 가져간다. 이런 살얼음 승부가 계속되는 타이 브레이크에서 정현은 24일 8강전 포함, 이번 대회 5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샌드그렌과의 8강에서는 1세트 6대4 승리 이후 2세트에 타이 브레이크를 맞았다. 게임 스코어 2대0으로 앞서다 서브 게임을 두 차례나 브레이크 당해 게임 스코어 3대5로 끌려갔다. 정현은 그러나 곧바로 샌드그렌의 서브 게임을 빼앗아 타이 브레이크를 만들었고 4대5에서 연속 3포인트를 따내 기어이 2세트를 챙겼다. 고비를 넘긴 정현은 3세트 게임 스코어 2대1에서 상대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6대3으로 결국 비교적 손쉽게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타이 브레이크 5전 전승은 남다른 멘탈과 자신의 스트로크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기대하기 힘든 기록이다. 서브 2개씩을 돌아가며 넣게 되기 때문에 그 2개를 모두 성공할 수 있는 집중력 역시 요구된다.
국내 스포츠팬들은 정현에 대해 “테니스 실력만큼 세리머니와 인터뷰 매너도 월드클래스”라고 칭찬하고 있다. 16강전 승리 뒤 중계 카메라 렌즈에 ‘캡틴! 보고 있나’라고 적어 옛 스승인 김일순 감독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이날은 ‘충 온 파이어(Chung on fire)’라고 적었다. 정현의 성 ‘정’을 일부 외국인은 ‘충’으로 읽는다. ‘온 파이어’는 완전히 불붙었다는 뜻. 절정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단식에서 준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정현은 5년 동안 차근차근 약점을 지워가며 마침내 세계 테니스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일각에서는 서브와 포핸드의 약점을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정현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때로 메이저대회를 건너뛰면서까지 눈앞의 목표보다 큰 그림을 보고 하나씩 다듬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도 길렀다. 무서울 것 없는 정현이 일생일대의 승부를 앞두고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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