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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하얀 스케이트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는 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피겨 스케이트를 선물 받고 운명이 바뀐다. 열한 살의 나이에 노르웨이 선수권을 석권하고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한 피겨 소녀의 천재적 재능은 올림픽 3연패, 세계선수권 10연패라는 전설적 기록을 남긴다. 훗날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은반의 요정’ 소냐 헤니(1912~1969)의 얘기다. 그가 세운 올림픽 3연패는 전무후무한 기록. 출전 선수의 나이 제한(올림픽 직전 7월 기준 만 15세)과 20대 후반의 체력적 한계를 생각하면 헤니의 3연패 신화는 영원히 깨지 못할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헤니는 사이클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스포츠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제1회 동계올림픽(1924년)에서 8위에 그쳤지만 3년 뒤 1927년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싱글을 제패하면서 그의 신기록 제조는 시작된다. 세계 대회는 1936년까지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정상을 놓치지 않았고 올림픽에서는 1928년 제2회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부터 3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비단 기록만이 아니다. 여자 피겨 100여 년의 역사를 통틀어 헤니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경기복부터 파격이었다. 치렁치렁한 긴 치마를 입던 관행을 벗어던지고 무릎이 드러난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실외에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경기력보다 보온성에 주안점을 두던 게 당시의 경기복이었다. 지금 같은 실내 아이스링크가 없던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발상의 전환에 관중들은 환호했다. 이뿐 아니다. 검은색 일색이던 스케이트 부츠도 화사한 흰색으로 갈아탔다. 짧은 경기복과 흰 부츠는 그의 특유의 파워 넘치는 탁월한 기술에 예술성을 가미하는 데 그만이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그제 이낙연 총리 주재로 열린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 업무보고에서 ‘하얀 스케이트식 혁신’을 거론했다고 한다. 보고자료에는 짧은 원피스에 흰색 부츠를 신고 회전하는 헤니의 발랄한 모습을 담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90여년 전 헤니처럼 혁신적 사고로 ‘큰일’ 내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가상화폐를 폰지 사기쯤으로 인식하는 것이 공직사회라 그다지 미덥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단 지켜보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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