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를 대상으로 분양할 예정인 고급 아파트의 분양가를 도시형생활주택까지 포함한 인근 공동주택의 시세와 비교해 책정하라” “1년6개월 전에 분양한 아파트 분양가의 110%를 넘지 마라” 얼핏 보기에도 매우 이상하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분양가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이상한 계산법이다.
2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강북 고급 아파트의 랜드마크로 야심 차게 추진됐던 ‘나인원한남’의 시행사는 두 달째 HUG의 분양 보증을 받지 못해 기약 없이 멈춰선 사업을 두고 속을 태우고 있다. 하루 금융비용만 1억8,000만원씩 물고 있다.
분양가를 놓고 벌이는 고급 아파트 사업자와 HUG의 밀당은 당연한 통과의례다. 그렇지만 통상 한 달을 넘기지 않는다. 두 달을 넘기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나인원한남은 국내 아파트 분양가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 최근 강남 집값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국토교통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HUG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김선덕 사장의 임기가 지난 8일로 끝나 이런 사안에 대한 결정을 하기도 쉽지 않다. 신임 사장 선임은 지연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HUG가 나인원한남의 분양 보증을 마냥 늦추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HUG가 요구하는 분양가 산출 방식 때문이다. HUG는 서울 전역과 경기도 과천, 부산광역시 일부 지역을 고분양가 관리·우려지역으로 지정해 해당 지역 아파트 분양가 상한선을 인근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 또는 평균 매매가격의 110%로 정하고 있다. 인근의 비슷한 규모 및 고급화 수준 단지 시세를 기준으로 분양 보증을 내줬던 HUG의 전례를 보면 한남더힐의 시세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만 이번에는 한남더힐 외에도 한남 리첸시아, 한남힐스테이트, 한남동 하이페리온1차, 용산한남아이파크(도시형생활주택) 등 체급이 맞지 않는 주택까지 넣어서 분양가 기준을 삼았다.
업계에서 HUG가 나인원 한남의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기준을 자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사업시행자인 디에스한남의 한 관계자는 “나인원 한남처럼 한 채당 40억원이 넘는 고가 주택은 일반 아파트와는 대상 고객층이 다르다”며 “분양가를 낮추면 결국 자재 수준을 낮출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대상 고객층인 ‘VVIP’들이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모델하우스 문을 연 과천 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과천주공 7단지 1구역 재건축)의 분양가 역시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2,995만원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부동산114가 집계한 19일 기준 과천시 부림동의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 시세는 3,336만원이다. 평균 분양가 기준으로 과천 센트럴파크 푸르지오써밋 34평(전용면적 84㎡)을 분양받아 주변 시세에 맞춰 판다고 가정하면 세금 등 기타 비용을 감안하지 않은 차익은 1억1,594만원으로 계산된다. 말 그대로 ‘로또 아파트’다. 이날 모델하우스에는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의 구름관중이 몰렸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왜 주변 시세보다 낮을 수 있었을까. HUG가 2016년 5월 분양한 래미안 센트럴 스위트(과천주공 7단지 2구역 재건축)의 분양가 2,678만원의 110% 수준으로 제한한 결과다.
HUG의 이런 계산법이 서울 집값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전문가들의 진단은 그렇지 않다. HUG의 규제가 시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분양가를 만들어 결국 시세 차익을 노린 청약 과열, 아파트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보다 저렴하면 당연히 시세 차익을 기대한 청약 수요가 몰려 과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입주 후 해당 단지의 시세 상승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주변 단지들의 동반 시세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혜진·박경훈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