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진 애 옆에 또 야무진 애….’ 너무 잘나가서 오히려 걱정이던 일말의 아쉬움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국민 김자매’가 한국 컬링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확보하며 신드롬을 이어갔다. 스킵(주장) 김은정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23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8대7로 연장 끝에 극적인 진땀승을 거뒀다. 결승 진출로 은메달 확보. 컬링 전 종목을 통틀어 올림픽 메달은 사상 처음이다. 영국을 꺾고 올라온 예선 2위 스웨덴과 대회 폐막일인 오는 25일 오전 금메달을 다툰다. 스웨덴은 한국이 지난 19일 7대6으로 이겨본 상대다.
세계적인 강호들을 연파하며 8승1패, 예선 1위로 준결승에 오른 한국은 이날 일본과 리턴매치를 벌였다. 한국의 유일한 패배는 일본전(5대7)이었다.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한일전인데다 예선에서의 패배, 한국 선수단의 주춤한 메달 행진 등으로 이날 경기는 축구 한일전만큼이나 관심을 모았다. 치킨집 주문전화도 축구 A매치 데이에 버금가게 불이 났다는 후문이다.
역대 전적 11승8패의 자신감으로 나선 한국은 예선에서의 패배를 완벽에 가깝게 설욕하며 금메달 결정전에 진출했다. 안경 속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흔들림 없는 전술 지휘로 인기 절정인 ‘안경 선배’ 김은정은 이날도 줄기차게 승리의 주문처럼 “영미, 영미”를 불렀다. 김은정이 그토록 외치는 김영미는 김은정의 친구인 김경애의 언니이고 김선영은 김영미 동생인 김경애의 친구다. 공교롭게 김은정의 어머니도 ‘영미’다. 김초희를 제외하고 모두 경북 의성여중·고 출신이라 대표팀은 지역 특산물에서 딴 ‘마늘자매’로 불리기도 하지만 선수들은 ‘팀 킴’을 선호한다. 이날 첫 번째 승부처는 7엔드. 6대4로 앞선 선공에서 나온 더블 테이크아웃(한 번에 스톤 2개 쳐내기)이 결정적이었다. 이어 ‘약속의 8엔드’에 한국은 다시 김은정이 상대 스톤을 기술적으로 얇게 쳐 내보내며 7대4로 달아났다. 마지막 10엔드에 7대7 동점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후공이라 유리한 연장 11엔드에서 천금의 1점을 따냈다. 김은정의 드로샷이 절묘하게 일본보다 더 붙었다. 한국은 파죽의 7연승을 달렸다. 올림픽 첫 출전에 금메달 문턱까지 간 것이다.
컬링은 평창올림픽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주요 인터넷 포털의 검색창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컬링’이 가장 위에 뜬다. 예선부터 승승장구한 여자 대표팀은 실력뿐 아니라 그들이 겪어온 척박한 환경과 어떤 상황에서도 똘똘 뭉치는 팀워크, 그리고 심지어 사투리와 안경 등 일거수일투족이 팬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로봇청소기와 밀걸레 등을 동원한 다양한 컬링 패러디 동영상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지 오래다. 걸그룹 트와이스를 설명하는 ‘예쁜 애 옆에 또 예쁜 애’라는 수식어는 팀 킴에 적용돼 ‘야무진 애 옆에 또 야무진 애’로 불리고 있다.
경기장 내에서 가지는 휴식시간마저도 화제다. 컬링은 5엔드를 마치면 잠깐 휴식시간이 주어지는데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작전을 짠다. 이날 한국은 평소처럼 바나나를, 일본은 언제나처럼 딸기를 먹었다. 보통 이때 선수들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는 해 팬들이 경기만큼이나 흥미로워하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팬들이 팀 킴의 경북 억양을 두드러지게 느끼는 동안 일본 팬들은 귀여운 얼굴의 스킵 후지사와 사쓰키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일본팀은 모두 홋카이도 출신. 5엔드 뒤 간식 타임을 일본 팬들은 ‘우물우물 타임’이라 부른다고 한다. ‘팀 후지사와’는 그러나 마지막 순간 팀 킴에 가로막혀 영국과의 3·4위전으로 밀려났다.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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