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공직자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면서 극의 흐름을 이끈다. ‘권선징악(卷善懲惡)’ 주제를 극대화하거나 극 중 갈등 요소를 부각할 때 주로 쓰인다. 때로는 혼탁한 사회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캐릭터로도 활용된다. 지난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도 부패 공직자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극 중 조범석 검사(곽도원 분)는 검·경 수사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사 개시를 알리며 “(조직폭력배들이) 반항할 경우에는 발포까지도 허용한다”고 선언한다. 그 즉시 이들 수사관이 급히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공중전화기였다. “얼른 도망가라”나 “피해 있어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금품·향응 등을 제공한 조직폭력배에게 수사 정보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범죄가 행해지는 장면이었다.
영화 ‘부당거래’에서는 검·경 수사관이 아닌 검사의 일탈이 그려진다. 주양(류승범 분) 검사가 출근과 동시에 달려간 곳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취조실 807호. 그곳에서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탈세 등 혐의로 구속한 김양수(조영진 분) 태경그룹 회장이 앉아있었다. 겉으로 보면 검사의 조사 장면이지만 내용은 달랐다. 주 검사는 그 자리에서 “걱정하지 마시고 내일 약식명령을 낼 거다”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약식명령서를 보여준다. 검찰의 주요 수사정보가 다름 아닌 검사의 손에서 피의자에게 그래도 전달된 것이다. 이는 형법 127조 공무상 비밀의 누설에 해당하는 범죄다.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할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법 조항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극 중에서 이들이 행한 전화 통화나 간단한 서류 공개 등이 검사·수사관 등에게는 불명예 퇴직·처벌은 물론 평생 ‘부패 공직자’라는 꼬리표까지 붙을 수 있는 범법 행위였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간단한 수사정보라도 피의자나 그 관계인에게 유출하는 건 심각한 범죄행위”라며 “전달한 수사 기밀 내용에 개인정보가 포함됐을 때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다른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정보 유출은 최근 서울고검 감찰부에서 진행 중인 수사와도 연관이 깊다”고 덧붙였다. 서울고검 감찰반은 지난 22일 고소인과 수사 대상자 등과 밀접한 관련 있는 인물에게 수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 등으로 현직 검사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 현직 검사로부터 수사 기밀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진 최인호(구속) 변호사가 검찰 고위 간부나 정관계 인사들에게 폭넓게 수사 무마를 로비했다고 알려져 있어 앞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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